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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수메르의 도시 라가시에는 많은 휴머니스트 성군들이 있었다. 라가시 제1왕조의 7대왕 엔메테나(Enmetena, 기원전 24세기)나 과거 다른 글에서 언급한 라가시 제1왕조의 11대왕 우루카기나(기원전 24세기)가 이에 해당된다. 이들보다는 더 잘 알려진 성군이 있으니, 그는 약 두 세기 이후의 라가시 제2왕조의 9대왕인 구데아(Gudea; Middle Chronology: 기원전 2144-2124년; Short / Low Chronology: 기원전 2080-2060년)이다.
※ 사르곤의 승전비: Victory Stele of Sargon
라가시의 찬란했던 황금기가 움마의 루갈작게시(Lugal-zage-si; MC: 기원전 2358-2334년; SC/LC: 기원전 2296-2271년)에 의해 막이 내린 후, 라가시는 암흑과도 같은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새로운 수메르의 패자인 루갈작게시는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한 아카드의 사르곤(Sargon; MC: 기원전 2334-2279년; SC/LC: 2270-2215년)에게 밀려났고, 아카드 제국이 수메르 전체를 다스리게 되었다. 라가시와 수메르의 일부 도시들은 반란을 일으켰지만, 반란은 잔인하게 진압되었고, 라가시는 다른 수메르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 메소포타미아 북부와 자그로스 산맥의 야만인들인 구티인(Gutian/Gutium)들이 수메르를 침공하여 아카드 제국을 무너뜨렸지만, 지배자만 셈족 유목민인 아카드인에서 구티인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런 어둠과도 같았던 시대에 수메르의 라가시에는 마치 수메르인들에게 희망을 불어줄 것 같은 왕이 즉위하는데, 그가 바로 구데아 대왕이었다.
구데아는 엔메테나처럼 빚들을 탕감하여주었고, 그의 치세 동안 그 누구도 채찍에 맞거나 곤봉에 맞지 않았었다 [1]. 그는 친절을 장려했으며, "어떤 엄마도 그녀의 아이를 때려서는 안된다"라고 기록했다 [1].
※ Statue of Gudea I, dedicated to the god Ningishzida; 2120 BC (the Neo-Sumerian period); diorite; height: 46 cm, width: 33 cm, depth: 22.5 cm; Louvre
또, 그의 아내의 여동생은 엔안네파다(Enanepada)로, 역사에 남은 최초의 시인인 여성 엔헤두안나/엔헤두아나(Enheduaana, 기원전 23세기의 인물로, 아카드 제국의 창시자인 사르곤의 딸이었다)처럼 우르에서 달의 신을 모시던 고위 사제(en-priestess)였다 [1].
※ Enheduanna, high priestess of Nanna (c. 23rd century BCE)
참고:
[1] Podany, Amanda. Weavers, Scribes, and Kings: A New History of the Ancient Near East, p.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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