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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수메르의 주요 도시 라가시(Lagash)에는 에미(E-Mi)가 있었다. 문자 그대로 "여자들의 집 house of women ('E'는 수메르어에서 '집'을 뜻한다)"을 뜻하는 이곳은 바와('바우'라고도 한다) 여신에게 헌정된 신전의 소유지에 존재했던 궁전으로, 라가시의 수도 기르수(Girsu)에 위치하였었다. 궁전 건물을 포함하여 에미에 포함되는 땅은 그 규모만 무려 4465 헥타르(17 제곱마일)에 이를 정도의 평지였으며, 해마다 많은 양의 보리를 생산하였었다.
수도에 위치했다는 것과 궁전이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황후가 담당하여 전체적인 운영과 관리를 맡은 곳이기도 하였다 (정확히는 '바라남타라 Baranamtarra'가 황후가 되기 전부터 황후가 관리한 곳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황후는 작물을 심는 것과 수확하는 것부터 곡물을 저장하고 이를 갈아 가루로 만드는 것까지 모든 일들을 두루 살피며, 감독하였었다. 높은 직책에서 일하는 남성의 수는 250명이었으며, 이들은 경작 가능한 땅을 봉급으로 받았었다. 때때로는 일년에 네다섯번은 보리로 이를 대신하여 받았었다. 높은 직책이 아닌 낮은 직책에서 일하는 남성의 수는 450명이나 되었는데, 이들은 매달 보리를 봉급으로 받았다. 이렇게 보면, 여자들의 집인 에미는 남자들로만 가득한 보리 농사를 위한 곳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에미에서는 보리 농사 뿐 아니라 부지 내의 양들의 털을 이용하여 당시 라가시와 황후의 부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직물(textile)을 만들어내는 작업 또한 이루어졌으며, 당시의 여성들은 이에 종사했었다. 에미에서는 20명의 여성들이 각각의 조(처음에는 2조 정도 존재했다)를 이루어 방적(spinning)과 직조(weaving)하는 일에 종사하였으며, 감독들이 이를 감독하였는데, 이들은 생산된 직물의 크기나 무게를 재며, 질을 관리했을 것이다. 감독들은 여성들을 감독하는 것에 부합하게 대부분 여성들이었다 (물론, 종종 남성들이 감독하기도 하였다). 라가시의 왕의 아내인 황후의 서기관이 기록으로 남긴 에미에서 일하는 수백명의 사람들 가운데 우리의 눈길을 끄는 이들이 있으니, 줌(Zum)이다.
※ Cylinder seal and modern impression: three "pigtailed ladies" with double-handled vessels. ca. 3300–2900 BCE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327067
줌은 말가(Malga)라는 이름의 남성 감독 아래에서 일을 하는 20명의 여성들 중 한 명으로, 노동자들의 이름과 봉급을 위계질서에 따라 적은 기록에서 그녀가 가장 위에 적힌 것은 그녀가 가장 연장자였거나 그녀가 속한 조 내에서 가장 영향력있었던 여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당연히 다른 여성들보다 많은 봉급을 받았었다. 그녀와 같이 일하던 다른 직조공 여성들이 한 달에 18 실라(sila; 1실라 = 약 1 리터)의 보리를 받는 반면에, 그녀는 24 실라를 받았었다. 24 실라나 18실라나 한 달을 버티기에 부족해 보이는 양이지만, 에미에서 일하던 남성들은 한 달에 48실라를 받았었으며, 아이들들은 12 실라를 받았었기에, 가족의 구성원들이 각자 일하여 번 보리의 양을 합친다면, 한 달을 버티기에는 충분한 양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줌에게는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기록에서 줌의 자녀는 그녀의 옆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당시의 줌에게는 먹일 자녀가 없었을 것인데, 아마도 이미 자녀들이 충분히 나이가 들어 알아서 벌어 먹고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여성들에게는 생물학적으로 낳은 자녀나 입양한 자녀가 있었던 것이 당연시되었으니 말이다 (줌의 남편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당연히 남편도 있었을 것이며, 먼저 나이가 들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 말가가 감독하지 않은 다른 조는 '난쉐-다누메아 Nanshe-danumea'라는 이름의 남성에 의해 감독되었다.
우루카기나(Urukagina) 대왕과 황후 샤샤(Shasha)가 라가시를 다스리며, 에미를 관리하는 시대가 도래하자, 에미의 노동자들의 수는 증가했고, 이 때문에 더 많은 감독들이 요구되었다. 우루카기나가 통치한 지 둘째 해 되던 해에 우루카기나는 에미에 있던 각각 20명의 여성들로 이루어진 두 조를 네 조로 확대하였고, 두 조는 두 남성 감독 의해 두 조는 두 여성 감독에 의해 감독되게 하였다. 이 때 새로 부임하게 된 두 여성 감독은 닌-카지다(Nin-Kazida; 닌-카지다는 다른 당시의 여성들이 그러했듯이 과거에는 직조공으로 일을 하였을 것이다)라는 이름의 여성과 이기바르(Igi-bar / Igi-barluti)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다. 참고로, 닌-카지다는 말가를 대체하여 줌을 포함한 20명의 직조공들을 이끌었다. 이 두 여성 감독은 두 남성 감독과 정확히 같은 책임을 지고 같은 일을 수행하였는데, 이는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당시에는 남성 감독들이 담당하던 작업장을 그들의 이름을 따라 칭하였는데, 목재 39개가 "이기바르의 직조소(weaving house)"에, 목재 78개가 "닌-카지다의 직조소"에 놓여졌다는 기록들도 있으니 말이다.
우루카기나와 샤샤는 직조업을 확장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작업장의 수를 계속해서 늘려갔다. 그리하여 우루카기나가 다스린 지 여섯째 해 되던 해에 6개의 직조소는 모직물을, 3개의 직조소는 아마포(linen)를 생산했으며, 138명의 여성들과 아이들이 각각의 조를 이루어 직조소에서 종사하였고, 에미의 노동자들 가운데 직조소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의 수는 에미의 다른 노동자들의 수를 압도할 정도로 많아졌다. 왕실의 행정관들은 늘어난 직조공들을 위해 더 많은 감독들을 필요로 하였고, 이 때 줌은 감독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이기바르와 닌-카지다는 감독으로 계속 일하고 있었고, 줌은 이제 새로운 여성 직조공들을 이끄는 또 다른 감독이 되어 삶을 이어갔다 (이 무렵, 난셰-다누메아는 직조소들에 있던 사실상 마지막 남은 남성 감독이었다).
※ Cone of Urukagina, Louvre Museum AO 3278.
우루카기나 대왕은 고아와 과부들을 세금을 거두는 대상에서 제외하고, 노예로 팔려간 아이들을 해방하여 부모에게 돌아가게 하여 최초의 휴머니스트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당시 돼지를 기르는 일을 보조하던 고아인 소녀는 그녀를 부양해줄 가족이 없어 당시 다른 여성들 보다도 훨씬 높은 양인 24 실라의 보리를 달마다 봉급으로 받았었으며, 직조공들의 자녀들이나 고아들은 거리를 떠돌며 구걸할 필요 없이 에미에서 봉급을 받고 일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당시 감독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던 여성인 에메테(Emete)는 "왕실의 여성 하인들의 우두머리 Head of the female royal servants"라고 불리었기 때문에 황후의 고문이자 조언자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녀는 다른 어떠한 여성 감독들과 다르게 여성 직조공들 뿐 아니라 남성 감독관들까지 감독했었다. 게다가 그녀는 그저 곡식을 봉급으로 받지 않았고, 대신에 그녀 스스로 경작할 수 있는 토지를 봉급으로 받았었다.
참고:
- Podany, Amanda. Weavers, Scribes, and Kings: A New History of the Ancient Near East, pp. 92-94.
- Podany, pp. 10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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