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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근동의 창조 신화들은 일반적으로 시간이 시작되는 시점이자 세상의 시작인 "태초"의 "순간"이 아니라 어떠한 한 시대나 시간의 기간인 "때 When"로 시작하는데, 가장 보편적이었던 메소포타미아의 창조 신화들인 에누마 엘리시와 아트라하시스 서사시 (Epic of Atrahasis) 는 각각 "저 높은 하늘에게 이름이 없던 '때'"와 "신들이 사람이었던 '때'"로 시작한다. 혹, 누군가는 여기서 창세기 1장은 "태초에"로 시작되기 때문에 다른 시점에서 쓰였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원어를 제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이다. "태초에"로 번역된 히브리어 "베레쉬트 בראשת"는 구체적이고 절대적인 하나의 순간이나 시점이 아닌, 확장되었지만 불확정한 기간, 일련의 사건들에 앞서는 시간의 기간이나 지속을 의미한다 [3]. "베레쉬트 בראשת"는 욥기 8:7에서는 욥의 태어난 하나의 순간이 아니라, 후에 욥기의 끝에서 욥이 다시 부자가 되기 이전, 하나님의 시험을 받아 재산을 잃고 미약해져서 고통스럽게 시간을 보내던 때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예레미야 28:1에서는 시드기야 왕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당시 왕의 통치 첫 해는 왕위에 오른 순간이 아니라, 차기 새해의 첫 날부터 시작되었으며, 새해가 오기 전까지 왕은 이 시점까지 시험적인 기간 동안 통치하였다 [3]. 예레미야는 창세기 1:1의 "베레쉬트"를 바로 이 왕의 통치 이전의 "시험적인 기간"을 의미하는데 사용하였다 [5]. 이를 고려한다면, 창세기 1:1의 "태초"는 세상과 시간의 시작인 순간이 아니라 다른 고대 근동의 신화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기간이자 어떠한 "때"를 칭하는 것이었다. 이는 곧 창세기 1:1이 NRSV 성경의 번역대로 "하나님이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실 때"였으며, 상황절(circumstantial clause)인 창세기 1:2의 종속절이자 이와 하나의 문장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버트 홈스테드 (Robert D. Holmstedt) 박사가 주장하였듯이 창 1:1은 종속절의 성질을 띄는 제한적 관계절(restrictive relative clause)인 호 1:2, 사 29:1, 레 25:48, 삼상 25:15, 렘 48:36과 비슷한 문법 구조를 가졌는데 [6], 이는 창세기 1:1이 고대 근동의 신화들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유사했음을 보여준다. 때로 시작할 뿐 아니라 종속절과 이어지는 상황절로 시작하니 말이다.
물론, 여기서 창세기 1:1이 1:2와 서로 종속절과 상황절이 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맞는 말로 보인다. 창세기 1:1에서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는 이야기와 모순되게 창세기 1:2에는 "땅이 '형체가 없고' '공허하며'"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본의미를 잃어버리게 한 잘못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공허하며"로 번역된 히브리어 "보후 בֹ֔הוּ"는 성서에 딱 세 번, 창 1:2, 사 34:11, 렘 4:23에만 등장하지만, "형체가 없는" 또는 "혼돈한"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토후 תֹ֙הוּ֙"와 함께 등장하기에 토후를 통해서 그 의미를 추정할 수 있다. "토후"는 보후와 달리 창 1:2, 신 32:10, 삼상 12:21, 욥 6:18, 12:24, 26:7, 시 107:40, 사 29:21, 34:11, 40:17, 40:23, 41:29, 44:9, 45:18, 45:19, 49:4, 59:4, 렘 4:23에서 등장하는 단어로, 대체로 광야나 황무지를 의미하는데 사용되었으며, 때때로 황폐화된 정착지나 떠돌아다니는 사람들, 또는 아시리아에 의해 파괴된 북이스라엘 왕국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 이는 "토후"가 의미 상으로는 비생산적인 땅의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이며, 두 단어 "토후"와 "보후"는 형체가 없고 공허한 땅이 아니라 두 단어가 함께 사용되었던 예레미야 4:23에서 멸망한 북왕국의 모습처럼 존재는 하되 "무질서하고 비생산적인" 땅을 지칭하고 그 상태를 나타내기 위한 단어였음을 보여준다 [4]. 즉, 원래의 의미는 땅이 비생산적이고 무질서했다는 것이었다. 다른 고대 근동의 신화들처럼 티아마트나 얌(리워야단)과 같은 혼돈이 제압되기 이전의 땅의 상태를 묘사하는 것과 동일하게 말이다. 그렇기에 창세기 1:2는 1:1과 모순되지 않으며, 창조주가 창조하실 때의 땅의 상태를 보여주는 상황절 정도였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렇게 보면 1:1과 1:2사이에 간격이 없기 때문에 간격 이론이 설득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고대 근동의 창세 신화 성서의 창세기의 도입부인 1:1-2가 정확히 일치하며 동일하다는 사실을 통해 고대 근동의 사관에서 창세기가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럼 그 고대 근동의 사관은 대체 무엇인지, 달리 말하자면, 이 고대 근동인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해할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이제 고대 근동의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오늘날의 우리는 어떤 존재하는 무언가를 묘사할 때, 그것의 색깔, 크기, 모양, 특징 등의 요소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고대 근동의 사람들은 이와 달리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묘사할 때 기능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곧 그 무언가가 기능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5]. 구약학자 존 H. 월톤 (John H. Walton) 은 고대 근동의 사람들은 물질적 특성이 아니라, 질서가 잡힌 체계 내에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존재론적 의미로 무언가 존재한다고 믿었기에 무언가가 물리적으로 만들어졌거나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능이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였다고 지적하였다 [2]. 예를 들어, 이들의 관점에서 태양은 물질적 특성이나 가스로 구성된 불타는 구체로서의 기능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와 인간 사회에 대한 기능적 역할을 통해 존재한다 [2]. 이러한 이들의 생각은 고대 근동의 문헌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보편적이었던 메소포타미아의 창조 신화인 에누마 엘리시에서도 확인되듯이 근동의 창조 신화들은 물로 가득한 혼돈이 있었고, 이를 창조주 혹은 신화의 주인공인 주신이 나타나 질서로 잡아 세상을 창조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이 혼돈과 물과 같은 물질들이 어디서 왔는지 그 기원에 대해서는 설명도 없으며 신경 조차 쓰지 않는다. 그리고 하늘과 땅이 없다는 언급대신 그들에게 이름이 없었다고만 언급한다. 창세기는 어떠할까? 창세기 1장에서 창조물의 기능과 역할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나열되는 것은 이러한 고대 근동인의 생각을 잘 반영한듯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오늘날의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를 따르는 이들이 창세기 1장에서 "창조"로 번역된 히브리어 "바라 באר"를 물질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를 의미했다고만 보기에 이러한 물질적 창조가 아니라는 해석에 거센 반발심을 표현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바라에 대해서 잠시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창세기 1장에서 "창조"로 번역된 히브리어 "바라 באר"는 물론 물질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를 의미하기 위해서도 사용되기는 하였지만, 대부분의 교회나 성당에서 가르치는 것과 달리 반드시 어떠한 것을 제작하는 물질적인 창조를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오히려 기능을 역할을 할당하거나 신성한 목적 혹은 질서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8]. 반드시 창조주가 새로운 창조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새로운 활동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7]. “바라 באר”가 사용된 시편 51:10에서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라는 구절은 새로운 물질적인 심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의 욕망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것을 말하며, 이사야 57:19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입술에 찬양을 부여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전체 맥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슬픔을 호소하는 자들을 변화시키는 것이지, 그들을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17]. 이사야 65:18의 경우, 야훼가 갑자기 예루살렘을 만든 것이 아니라 기쁨의 장소로 지정하셨다는 의미이다. 예루살렘은 유다의 초대 왕 다윗이 정복한 이후 유대교의 중심지이자 야훼의 성소가 있는 도시가 되었지 그 이전은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가나안의 이방신을 따르는 도성이었으니 말이다 [7]. 이를 고려한다면, 창세기 1장의 창조 역시 고대 근동인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물질적 창조보다는 이전에 존재하던 것들에 창조주가 질서와 기능과 이름을 부여한 것, 곧 기능적 창조였다는 것이다 [8]. 고대 근동의 다른 창세 신화들처럼 창조주가 세상에 질서와 이름과 기능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창조의 과정이 7일(안식일 포함)이라는 것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7과 관련된 몇가지 성서와 고대 근동 문헌의 예시들을 잠시 살펴보자. 출애굽기 40:19-32은 야훼의 성막은 7단계로 나뉘어져 세워졌다고 기록하며, 레위기 8:33-35는 제사장의 위임식은 7일에 걸쳐 진행되었다고 언급하고, 열왕기상 6:38과 8:2와 8:65은 솔로몬은 7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여 7일 동안 야훼를 위해 7번째 달에 축제를 열었다고 기록하고, 8:31-53을 보면, 솔로몬이 연설 가운데 야훼께 한 간청은 7가지로 구분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대 수메르의 도시 라가시(Lagash)의 왕 구데아(Gudea, 2144-2124 BC)의 원통(Cylinder B)은 라가시의 주신 닌기르수(Ningirsu)를 위한 7일에 걸친 성전 봉헌식을 기록하며, 우가리트 신화(CAT 1.4 VI: 24-33)에서는 폭풍신 바알(하닷)이 바다 신이자 일곱 머리 용인 얌/나하르/투난/로탄을 죽인 후 자신의 왕궁이자 신전을 7일에 걸쳐서 건축하였다고 기록한다 [9]. 우리가 예시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7은 신성한 숫자이자, 주로 신의 거처인 신전/사원/성전과 관련되었으며, 신의 질서를 나타나는데 사용되었다. 바라가 새로운 역할/목적을 부여하여 이전의 존재하는 것들로 존재론적 의미를 갖게하는 행위를 의미한다는 것과 창세기 1장의 창조의 과정이 성막/성전이나 고대 근동의 신을 위한 신전의 건축 과정과 유사하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창세기 1장이 7일에 걸쳐 만물이 갑자기 창조되었다는 것보다는 혼돈스럽고 무질서한 이 세상에 신이 어느 순간에 나타나 이곳의 질서를 잡고 자신의 성소이자 신전으로 기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5]. 마치 고대 근동의 신화에서 마르둑이 기존에 존재하던 세상에서 혼돈인 티아마트를 제압하여 왕이 되고 세상의 질서를 다시 잡은 것과 바알(하닷)이 마찬가지로 기존에 존재하던 세상에서 혼돈인 얌(리워야단)을 제압하여 왕이 되고 세상의 질서를 다시 잡고 7일에 걸쳐 자신의 성전을 건축한 것처럼 말이다. 사실 창세기 1장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뿐이었다.
※ Ninurta with his thunderbolts pursues Anzû stealing the Tablet of Destinies from Enlil's sanctuary (Austen Henry Layard Monuments of Nineveh, 2nd Series, 1853).
누군가는 피조물들의 창조 순서는 무엇이냐고 이야기할 것이다. 왜냐하면, 날-시대 창조론에서는 이를 지질학적 연대기에 부합하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세기의 날들을 한 번 다시 보기를 바란다. 첫째 날은 빛과 어둠에 대한 것이고, 넷째 날은 해와 달과 별들과 같은 천체들에 대한 것이다. 둘째 날은 하늘과 바다에 대한 것이고, 다섯째 날은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에 대한 것이다. 셋째 날은 땅과 풀에 대한 것이고, 여섯째 날은 땅의 짐승들과 인간에 대한 것이다. 이렇게 각 날들이 서로 연결되며,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의 피조물들이 각각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의 피조물들의 속성이자 활동하는 배경이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총 세 개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5]. 이는 과학적이거나 생물학적인 순서가 아니라 당시 히브리인들의 생각을 반영한 순서이다. 출애굽기 속 광야의 이스라엘인들의 진영이 총 세 개의 구역 곧 성막이 있는 레위인들이 머무는 곳, 그리고 그 바깥으로 나머지 12지파가 머무는 곳, 그리고 그 바깥으로 이방 민족들이 머무는 곳으로 나뉘어진다는 것과 성막이 총 세 개의 구역인 바깥뜰, 성소, 지성소로 구분된다는 것, 그리고 율법에서 동물도 제사용 동물, 정한 동물, 부정한 동물로 총 세 부류로 나뉘어진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히브리인들은 영적인 삶이 하나님과의 가까워짐에 따라 세 가지 원형으로 이루어진 영역에서 발생한다고 믿었었다 [10]. 이에 부합하게 창세기 1장 속 창세기가 3개로 구분되었지만, 이 중 1번째 부분인 첫째 날과 넷째 날에는 동물이 언급되지 않으며, 2번째 부분인 둘째 날과 다섯째 날이 되어야 새와 물고기같은 동물이 등장하고, 마지막이자 3번째인 부분인 셋째 날과 여섯째 날이 되어서야 정한 동물들과 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인 인간이 등장한다 [5]. 즉, 이러한 창조의 순서는 유대인들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며, 위에서 언급한 숫자 7과 마찬가지로 세상이 신의 질서와 순서에 따라 그의 성전으로 “거룩하게” 변모하였음을 보여주고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절대로 과학적이거나 역사적인 순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브렌든 브라이언 (Brandon J. O' Brien) 과 이 리차드 (E. Randolph Richards) 가 말했듯이 고대인들은 "순서"에 대해서 오늘날의 우리처럼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12].
물론, 에누마 엘리시에 마르둑이 티아마트를 반으로 갈라 하늘과 땅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는 것을 근거로 이러한 해석에 반대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원전 12세기에 바빌로니아의 이신 제2왕조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역사상 최초로 바빌론의 주신이기만 한 마르둑을 메소포타미아 신들의 왕으로 지위를 격상시키면서 그 때 처음으로 만들어진 바빌로니아 신화인 에누마 엘리시의 원형이 되는 우가리트 신화에서는 같은 전투인 폭풍신(에누마 엘리시: 마르둑; 우가리트 신화: 바알 하닷)과 혼돈과 바다의 신 (에누마 엘리시: 티아마트; 우가리트 신화: 얌/나하르/투난/로탄) 사이의 전투 이후 그저 바알이 7일에 걸쳐 자신의 성전을 지었다가 다이다. 무언가를 만든다거나 하늘과 땅을 창조한다는 내용은 없으며 [1], 땅과 하늘과 피조물들은 이미 있었고, 그저 혼돈의 세력을 무찌르고, 7일 동안 성전을 지어 질서를 잡았다는 내용이다.
- 사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메소포타미아의 에누마 엘리시가 가나안 북부에서 이주한 셈족 유목민에 의해 메소포타미아로 전파되어 형성된 것으로 보며, 그 기원에는 우가리트 신화가 가장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모두 성서의 창세 신화가 에누마 엘리시 보다 우가리트 신화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에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인 에누마 엘리시 보다 원래의 신화, 곧, 그 기원에 더 가깝다고 보고 있다.
- 에누마 엘리시는 기원전 12세기에 처음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 Leviathan and Yahweh's Conquest over the Sea:
더 오래된 원형이라는 것은 둘째 치고, 이사야서와 시편에서 야훼가 똑같이 리워야단(얌의 다른 이름)을 무찔렀고, 또 창세기의 창조 과정이 7일이라는 것은 창세기 1장은 우가리트 신화와 더 닮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우가리트 신화와 동일하게 세상의 창조보다는 야훼의 성전에 대한 것이라는 것이다. 또, 창세기 1장과 사실상 똑같은 순서와 내용의 기록인 예레미야 4:23-26을 본다면, 이를 거의 확실시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의 침공 후, 토후와 보후인 상태가 되었고, 빛이 없었으며, 사람도, 새도, 풀도 없어 땅은 사막이 되었다고 기록한다. 분명히 이스라엘은 당시의 우리가 상상하는 고비사막이나 사하라 사막과 같은 모래만 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풀도 많아 푸른 목초지였으며, 새들과 동물들은 여전히 붐볐었다. 아시리아의 침공은 자연에 큰 타격을 입히지 조차 못했으며, 이스라엘의 사람들 중 상당 수는 당시 이스라엘에 남았고, 일부가 포로로 끌려가거나 망명을 갔었다. 그저 왕국이 멸망하기만 했었다. 그게 다이다. 우리가 이 관점에서 본다면, 창세기 1장 역시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가 아니라 우리의 눈에는 평범한 자연이지만 어떠한 질서나 체제가 없는 상태, 왕국으로 비유하자면, 모든 게 다 있지만 무정부 상태이자 어떠한 통치자가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 The sky god kills the dragon Illuyanka. Behind him is his son Sarruma. The twisting body of the snake is depicted in undulating lines with human figures sliding along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Ankara, Turkey
그런데, 덴마크 학자 야콥 그뢴브크(Jakob Grönbæk)에 따르면, 고대 근동인들에게, 특히 고대 레반트인들(이스라엘인 포함)에게 있어서 창조는 원래 먼 과거의 단일 사건이 아니라 매년 우주를 재생/재창조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18]. 다음 글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우가리트 신화가 계절의 변화, 곧, 주기적인 계절의 변화를 폭풍신의 바다의 용신(얌)과 죽음의 신(모트)과의 전투들을 통해서 나타낸다는 것, 우가리트 신화와 관련된 히타이트 신화에서는 폭풍신(타르훈즈 Tarḫunz; 후르리인들의 신화의 '테슙 Teshub')의 바다의 신과 죽음의 신과의 전투들이 아니라 건기와 가뭄을 상징하는 지하세계의 용신 일루얀카/일루양카(Illuyanka)와의 전투 만을 기록하고 [25], 이를 기념하기 위한 봄의 축제인 푸룰리(Puruli)축제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우가리트 신화와 유사한 신화인 에누마 엘리시라는 신화를 가진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역시 마르둑이 바다의 용신 티아마트를 물리친 것과 이를 기념하고 보리 파종을 기념하기 위한 봄철 축제가 있었다는 것은 창조가 먼 옛날의 한 사건이 아니라 해마다 기념되던 주기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주며, 모두 계절의 변화와 농업과 관련되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 봄 축제(푸룰리 축제)에서 암송되었을 히타이트의 타르훈즈 신화에서 뱀/용(일루양카)는 건기를, 폭풍신의 최종 승리는 봄이 오는 것을 나타내며, 나아가 신화는 전체적으로 계절의 순환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23]. 당시 왕은 폭풍신의 아들로 여겨졌는데, 히타이트 학자인 볼케르트 하스에 따르면, 뱀/용(일루양카)을 물리치는 데 있어서 그의 도움은 왕권 제도에 대한 배경(일종의 정당성)을 제공한다고 한다 (신화에서 폭풍신 테슙이 인간 여성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사루마 Sarruma'는 그가 일루양카와 싸울 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25]) [23]. 해당 신화의 후기 버전에서 폭풍신과 싸운 괴물(용)은 바다 뱀(용)으로 그 특성이 바뀌게 되었다 [24]. 그렇기에, 이를 바탕으로, 폭풍신이 바다와 바다 뱀 모두와 싸운다는 우가리트 신화는 히타이트 신화와 후술할 시리아 지역(마리)의 신화와도 연결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24].
- Recited at the spring festival, this myth illustrated the cycle of the seasons, with the serpent representing the dry months and the storm-god's final victory representing the coming of spring [23]. The king is regarded as the son of the storm-god, and according to Hitte scholar Volkert Haas, his assistance in defeating the serpent provides an etiology for the institution of kingship [23]. In the later version of this myth, the monster becomes a sea serpent [24]. It seems possible, then, that the Ugaritic myth of Baal fighting both the sea and a sea serpent is connected with both the syrian and Hittite versions of the storm-god combat myth [24].
매년은, 모든 새해는 새로운 시작이자 그러한 시작이 다시 반복되는 것이었고, 그뢴브크를 포함한 여러 학자들에 따르면, 세계의 창조와 야훼의 즉위(야훼께서 만물의 주인시자 신들의 왕으로 오르는 것)와 그의 왕권은 매년 새해에 기념되었는데, 이는 고대 가나안/이스라엘 달력에 따라 추수하는 계절인 가을에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한다 [18-19]. 특히, 새해는 추수와 야훼의 왕권을 기념하기 위해 원래의 초막절, 곧, 우가리트 신화와 창세기 1장과 동일하게 7일이라는 기간을 가진 절기가 열렸던 해이며, 이러한 주제를 포함하는 가장 오래된 시편들 중 일부는 이 축제를 위해 작곡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 하박국 3장의 경우, 음악적인 표기법을 포함하고 있으며, 의심할 여지 없이 같은 축제 기간 동안 불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9].
- According to Danish scholar Jakob Grønbæk, creation was originally understood not as a singular event of the distant past, but an annual regeneration of the cosmos. Every year was a new beginning-a re-reation-and according to several scholars, including Day and Grønbæk, the creation of the world and Yahweh's enthronement were celebrated every New Year, which occurred in autumn during the harvest under the old Canaanite/Israelite calendar [18-19]. Specifically, the New Year was when the original Feast of Tabernacles was held to celebrate the harvest and Yahweh's kingship, and some of the oldest Psalms that contain these motifs might have been composed for this festival. Habakkuk 3 also contains musical notation and was undoubtedly sung during that same festival, according to John Day [19].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러한 폭풍신/풍우신이 용신을 잡는 신화가 힌두교 신화, 힌두교로부터 파생된 불교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일본과 같은 동북 아시아 국가들의 신화, 그리스 신화, 히타이트 신화에 등장한다는 것을 근거로 원시 인도유럽인(Proto-Indo-European peoples)들로부터 기원하였다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가나안과 시리아 지역을 포함한 레반트에서 기원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셈족에 의해 처음으로 형성된 신화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30]. 이러한 셈족의 신화가 히타이트(타르훈즈와 일루얀카)와 그리스(제우스와 티폰) 그리고 메소포타미아(마르둑과 티아마트)를 거쳐 더 먼 곳까지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메르 신화에서는 이러한 용신을 잡는 풍우신에 대한 내용이 아예 등장하지 않으며, 메소포타미아 중부의 도시 에쉬눈나(Eshnunna)에서 발견된 기원전 2400년대의 유물에서 일곱 머리의 괴수가 그려져있지만 [29], 이것이 직접적으로 풍우신이 바다나 기근과 관련된 용신을 잡는 신화와 관련이 있는 지는 불확실하다. 수메르의 전사신 닌우르타가 잡았다는 안주(Anzû)나 아자그(Asag)와 같은 그저 신화 속 요괴나 괴물 정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고학적으로 확인되듯이 이러한 신화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모티프는 시리아 지역의 셈족의 고대 도시 마리(Mari; 기원전 2900년대에 세워져 기원전 3세기 무렵에 버려진 도시)에서 발견된 유물에서 확인되며, 가장 오래된 기록 역시 마리에서 발견된 토판 속 기록으로, 풍우신 하닷이 바다와 싸우는 것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30].
기후적 맥락에서도 건조하지 않은 지역에 사는 원시 인도유럽인들이나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수메르인들에게서 이러한 신화가 기원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건조한 지역에서 농업을 하던 셈족에게서 기원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31-32]. 그들에게는 건기가 재앙 그 자체였으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청동기 시대(기원전 3300-1200년대) 동안 비와 바람과 풍요와 홍수와 폭풍을 주관하는 풍우신을 향한 그들의 열정은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31-32]. 그리고 그런 풍우신(하닷/타르훈즈)이 건기(또는 혼돈)의 신(리워야단/일루얀카)를 이기는 신화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였을 것이며 [31-32], 이와 관련한 종교 행사는 가장 중요한 행사로 여겨졌을 것이다.
- 성서의 홍수 신화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2750년경 수메르의 슈루팍에서 발생한 국지적 홍수에 기원을 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창세기의 낙원 이야기를 비롯한 여러 이야기가 수메르 신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인식되기에 성서의 창조 신화의 배경이 수메르나 메소포타미아 남부가 아니라 시리아라는 것에 모순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일부는 창세기 1장의 신화가 홍수 신화보다 후대에 형성되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고학적으로 볼 때, 다양한 지역과 민족들에 의해 신화가 합쳐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러한 신화가 반드시 역사적일 필요는 없으며, 수메르 신화와 연결되고 선행될 필요도 없다. 기원을 따지고 보면 수메르 신화나 창세기의 다른 이야기들과는 무관한 신화다. 그저 신들이 세상을 지었다는 전제와 계절의 순환을 나타내는데 쓰였다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 할 것이다. 이야기의 기원 시기나 발생 지역, 그리고 다른 신화들과의 관계 보다는 이야기가 가지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풍우신이 용신을 잡는 창조 신화는 어떻게 보면 신들이 세상을 지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계절의 순환을 중점적으로 나타낸다. 수메르 신화는 이와는 다른 내용을 다루지만 마찬가지로 신들이 세상을 지었다고 이야기한다. 현대의 종교인들 역시 신이 세상을 지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참고로, 하박국 3장은 우가리트 신화에서 폭풍신이 바다의 신이자 판관 나하르(강이라는 뜻)라고 불리우는 얌(바다라는 뜻)과 싸우고, 또, 레셰프라는 전쟁과 전염병의 신과 함께 등장한 것과 동일하게 야훼의 바다(얌)와 강(나하르)들을 향한 진노와 그들과의 싸움, 그리고 야훼의 종으로서의 레셰프(하박국 3:5)를 언급한다.
- "... Baal smote the dragon and rejoiced and poured out ... on the earth ... the archer Resheph ... shot his kdneys and his heart." - KTU 1.8.2.1-3
- 출애굽기의 10가지 재앙에 대한 성서의 또 다른 구절인 시편 78:48에는 "그들의 가축을 '우박'에게, 그들의 양 떼를 '번갯불'에게 넘기셨으며"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 "우박"으로 번역된 것은 "데벌 דָּ֑בֶר"로 에블라의 주요신들 중 하나였으며 [20-21], "번갯불"로 번역된 것은 "레셰프 רֶ֖שֶׁף"로, 에블라와 가나안에서 숭배받던 판테온(Pantheon) 중 하나로, 후에 이스라엘의 수도가 된 주요 가나안 도시인 세겜의 수호신이자 전쟁과 전염병의 신이었다 [20]. 레셰프는 하박국 3장에서는 데벌과, 신명기 32장에서는 "케테브 קטב (우가리트 신화; KTU 1.5 ii:24; 가나안 신화 속 바알 하닷에게 얌/리워야단에 이어 죽임을 당한 죽음과 저승의 신 "모트 Mot"의 하수인)"와 함께 등장하는데, 하박국 3:5에서 데벌은 "역병"으로, 레셰프는 "불덩이"로 번역되었으며, 신명기 32:24에서 레셰프는 "불 같은 더위"로, 케테브는 "독한 질병"으로 번역되었다 [21, 22]. 레셰프는 사마리아 왕국(또는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인 세겜의 주신이기도 하며, 동시에 그는 또한 황혼과 평화의 신이자 예루살렘(샬림/슐만의 기초/도시라는 뜻)의 주신인 샬림/슐만(Shulman)과 자주 연관지어지거나 동일시되었고, 합쳐져 레셰프-슐만(Resheph-Shulman)이란 신으로도 역사에 등장하는데 (레셰프는 태양의 수호자이자 저승의 문지기 신이었는데, 이곳은 고대 가나안인들에게 있어서 매일 해질녘(황혼)에 해가 지는 곳이었기에 두 신이 연관지어지는 것이나 동일시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슐만은 성서의 솔로몬(사무엘하 12:25에서는 다윗이 그를 솔로몬, 즉, 샬림 신의 이름이 들어간 이름을 부여하여 칭한 것과 달리 선지자 나단은 그를 여디디야, 곧, 샬림이 아닌 야훼의 이름이 들어간 이름을 부여하여 부른다), 압살롬(슐만은 나의 주이시다라는 뜻; 사무엘하 5:20에서 다윗은 야훼를 바알이라 불렀다), 아시리아의 왕의 이름으로 종종 사용되던 살만에셀(슐만은 탁월하시다/으뜸이시다)이라는 이름에서도 확인된다. 더 자세한 정보는 다음 글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기원전 8세기의 샤바카 석비(Shabaka Stone)는 멤피스의 프타 대신전에 세워진 것으로, 멤피스에서 유일한 태고의 창조신이자 멤피스의 주신으로 여겨지던 프타의 창조 신화를 기록하는데, 신화에서 프타는 자신의 신성한 생각과 말씀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고 그 일이 끝나면 그것이 좋은 것을 보고 만족하며 쉬게 되는 것으로 기록된다 [26]. 이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와도 유사한데, 이 때문에 학자들은 창조 이야기의 원형은 하박국과 이사야와 시편과 같이 얌(리워야단)을 상대로 한 야훼의 승리와 계절의 순환과 새해(신년)와 함께 시작되는 세상의 재창조에 대한 것이지만, 기원전 6세기의 유다 멸망 이후 이집트로 이주하여 이집트에서 유수기와 헬레니즘 시대를 보낸 유대인들이 이집트 신화의 영향을 받았고, 이것이 성서의 여러 전승들이 하나로 합쳐지며 오경이 형성되고 편집되어 문서화되던 헬레니즘 시대 때 기존의 창조 서사시에 더해지면서 창세기 1장은 이집트 신화와도 닮게 되어버린 것이라고 추정한다. 다음 글들(1, 2)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요셉 이야기와 출애굽 이야기를 이러한 이집트에서 다시 유다 땅으로 헬레니즘 시대 동안 돌아온 유대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학계의 지배적인 설의 근거로 사용되는 고고학적 사실들을 고려한다면, 이집트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성서에 끼쳤을 영향력은 무시 못하며, 나아가 창세기 이야기가 독자적으로 가나안.이스라엘에 존재했지만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이집트 신화의 영향을 받게되었을 가능성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의 요소들이 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글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헬레니즘 시대 동안 유입된 그리스 신화의 영향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27]. 물론, 이렇게 창세기의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와 이집트 신화의 영향까지 더해진다고 해서 그 의미, 곧, 계절의 순환과 재창조를 나타낸다는 의미가 사라졌다거나 해당 이야기를 형성하던 편집자들이 이러한 의미에 대해 무지했다는 것은 아닌데, 이는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인들과 바빌로니아인들처럼 낮과 밤의 주기, 나일강의 연간 주기를 통해 관찰할 수 있는 지속적인/반복적인 창조의 상태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28].
※ Cosmos and Chaos: Understanding the Bible’s Description of Creation:
창세기 1장에 대해서 창조의 순서 등을 생각하면서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젊은 지구론이나 오랜 지구론(예: 날-시대 창조론)과 같은 이론들이 무의미하고 필요가 없다. 창세기 1장은 과학이나 해석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창조주가 무질서했던, 토후 와 보후 했던 땅과 세상에 나타나 질서와 이름을 부여했다 그 정도만을 이야기하기 위함이었을 뿐이었다. 이전에 존재하던 것들은 창조주가 이름을 부르고 새로운 목적을 부여하자 존재론적 의미를 갖게되었다. 김춘수의 시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처럼 말이다.
- 물론, 날-시대 창조론 (Day-Age Creationism)이 완전히 무의미하고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진화론에 반대하고 오랜 지구 창조론을 따르는 해당 이론은 진화론을 거부하는 종교인들에게 있어서는 최적의 이론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 날-시대 창조론은 히브리어로 "날"을 뜻하는 욤(יום)이 문자 그대로의 24시간의 하루 뿐 아니라 긴 세월이나 정확한 기간을 알 수 없는 기간 및 시대를 의미한다는 것과 하나님께는 천년이 하루나 밤의 한 순간과도 같다는 성서의 말씀을 근거로 창세기의 6일을 문자 그대로의 6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준으로 한 매우 긴 세월이었다고 해석하여 과학적 사실들과 지질학적 연대를 창조론과 조화시키는 이론이다. 창세기 1장에는 넷째 날에 해, 달, 별을 궁창 안에 두었다고 기록되었지만, 젊은 지구론자들도 인정하듯이 천체들은 지구의 대기권으로 해석되는 궁창 밖에 존재하는데, 그렇기에 날-시대 창조론에서는 천체들의 창조가 창세기 1:1의 하늘들과 땅(지구)의 창조에 포함되며, 첫째 날에 창조된 피조물들이고, 넷째날에는 셋째 날의 식물들의 창조와 그 여파로 맑아진 대기로 인해 지구에서 뚜렷하게 보이게 되어 성서의 말씀 그대로 징조로서 기능하게 된 것이라 해석한다 [13-14]. 이전까지는 지구의 구름이 가득하고 어두운 대기에 의해 천체들이 가려져 햇빛만 조금 새어 들어오는 정도로, 창세기의 말씀대로 지구에는 천체가 보이지 않고, 빛과 어둠 만이 있는 상태였다고 해석한다 [15]. 셋째 날의 식물들에 대해서는 문자 그대로의 식물들 보다는 지질학적으로 확인되듯이 광합성을 하는 생물들과 식물들의 기원이 되는 초기 생물들로 해석한다 [16]. 여섯째 날의 생물들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가축들이나 그 가축들의 기원이 되는 생물들이라 해석하며, 나머지 불필요한 생물들은 다섯째 날에 창조되었다고 보고 , 다섯째 날의 해양생물의 창조부터 날짐승들의 창조에 대해서는 해양생물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고생대의 캄브리아기 생물대폭발(Cambrian explosion, 5억 4200만 년 전)로부터 공룡의 시대인 중생대를 거쳐 신생대까지를 아우르는 긴 세월이라고 해석한다 [17]. 물론, 다섯째 날의 바다짐승/고래로 번역된 탄님(תַּנִּין)은 악어나 뱀과 같은 파충류나 신화 속 용과 같은 거대 괴수를 가리키는 데에 사용되었기에 파충류와 양서류와 공룡이 다섯째 날의 창조물이었다는 것은 날-시대 창조론의 해석처럼 필요한 동물과 불필요한 동물로의 구분을 동반하지 않고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 다누리호가 촬영한 지구와 지구를 공전하고 있는 달의 사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우리 인류는 점점 더 겸손해진다. 한 때 지구가 중심이라 생각했으나, 이제는 지구가 중심이 아님이 밝혀졌으며, 더 나아가 온 우주의 점만도 못할 정도로 작은 행성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작디 작은 곳에서 살아가는 작디 작은 사람들 사이에는 한 가지 논쟁거리가 있으니, 바로 창세기 1장이다.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해서 다루어 보도록 할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있기 전부터 많은 기독교인들은 창세기 1장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기 2세기 이레네우스 (Irenaeus of Lyons) 는 그의 저서 Against Heresies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바로 죽지 않고, 거의 10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다가 죽은 것과 베드로후서 3:8에서 주께는 하루가 우리의 천년과 같다고 언급된 것을 근거로 창세기 1장의 하루는 문자 그대로 24시간의 하루가 아니었을 것이며, 창조의 6일은 6일이 아니라 6000년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순교자 유스티누스 (Justinus) 도 Dialogue with Trypho, 81, 을 통해 알 수 있듯이 24시간이 아니라 1000년으로 해석하는 것에 동의했다 [11].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Clement of Alexandria) 의 경우, 그의 Stromata 6권 (Book 6) 16장 (Chapter 16) 에서 드러나듯이, 1000년으로 해석하지는 않았지만, 예수와 동시대의 인물인 알렉산드리아의 필로 (Philo of Alexandria) 가 The Creation of the World, 3, 에서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문자 그대로 6일이 아니라 만물이 그저 과거의 한 순간에 창조되었다고 보아 창세기 1장을 비유로 해석하였다 [11]. 창세기 1장의 순서를 실제 순서가 아니라 중요도에 따른 순서로 보았는데, 만들어진 날이 뒤에 있을 수록 창조주께 더 중요했다고 본 것이었다 [11].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 (Athanasius of Alexandria),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e of Hippo), 오리겐 (Origen) 과 같은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이러한 필로의 입장과 비슷한 입장을 취했었다 [11]. 참고로, 아우구스티누스는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4권 27장에서 창세기 1장의 날이 태양에 의해 나눠진 24시간의 하루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준으로 한 하루로 보았으며, 창세기 1장의 6일이 2장 4절에서 1일로 언급되었음을 지적하였다 [11]. 이 같이 대부분의 초대 교회 교부들은 창조를 순서적이라기 보다는 한 순간에 갑자기 일어난 과정으로, 창세기 1장은 비유적으로, 지구의 나이는 문자 그대로 6000년이 아니라 그 이상이었을 것으로 보았었다. 그렇다면, 중세 (5세기 말 - 15세기 말) 유럽에서는 어떠했을까? 아이작 뉴턴 (Isaac Newton, 1642-1726/1727년), 요하네스 케플러 (Johannes Kepler, 1571-1630년) 와 같은 인류 역사에 큰 기여를 한 최고의 과학자들과 저명한 주교인 제임스 어셔 (James Ussher, 1581-1656년) 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구의 나이를 6000년이라 믿었었지만, 당시의 과학기술의 한계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초대 교부들의 해석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창세기1장의 6일을 비유적으로 보는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랐던 영국의 신학자 로버트 그로스테스트 (Robert Grosseteste, 1175-1253년) 는 창조주가 빛과 물질을 창조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머지 피조물들이 산출된 것이라 보았다 [11]. 또 다른 중세 프랑스의 주교였던 콘치스의 윌리엄 (William of Conches, 1090/1091-1155/1170년)은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읽지 말라 권했으며, 아담이 즉시 흙에서 창조되지 않았고 대신에 서로 상호작용하는 자연 원소들로부터 인간이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그러니까 창세기 2장은 창조주가 창조에 넣은 자연적인 과정들에서 인간이 생겨났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1]. 이와 같이 이 시기 동안에도 지구의 나이를 6000년이라는 틀 밖에서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또, 이후에는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의 간격이 있다고 보아 창세기 1장 1절의 창조로부터 불특정한 매우 긴 혼돈의 시간 이후의 2절부터 문자 그대로의 엿새 동안의 혼돈의 피조물들을 질서의 피조물들로 바꾸는 창조가 있었다고 보는 간격 이론 Gap Interpretation (Or Chaos-Restitution Interpretation) 이 각광받기 시작하여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1804년), 요한 웨슬리 (John Wesley, 1703-1791년), 존 밀턴 (John Milton, 1608-1674년) 과 같이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들 사이에서 받아드려질 정도로 당시의 지배적인 주류 해석으로 떠올랐고 대부분의 성경 주석가들에 의해서 채택되었다 [11]. 이 덕분에 지질학과 같은 학문이 발전하여 지구의 나이가 수백만 년 보다도 더 되었다는 것이 밝혀질 무렵, 이 생각에 반대하는 신학자는 거의 없었으며, 제임스 어셔 주교의 6000년 연대기는 교회들에서는 영향력이 없었고, 대부분 무시당했었다 [11]. 당시 유럽이나 미국의 거의 모든 교회들은 공식적으로 지구의 나이가 6000년 보다 훨씬 오래되었다고 보았으며, 오랜 지구론을 지지했었다 [11].
이제까지의 기독교인들의 지구의 나이에 대한 입장을 보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현대의 입장과 너무나 달랐었다. 1960년대 이전의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을 욕하고 반대한 문자주의적 근본주의자 기독교인들도 자신을 젊은 지구론 지지자로 여기지 않았으며, 당시의 고생물학으로 밝혀진 것처럼 지구의 역사와 생물의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는 것과 지질 연대기를 받아들이고 따랐었다 [11]. 이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창조론자들은 간격이론이나 날-시대 창조론 (Day-Age Creationism)을 믿었었으며, 인간 진화를 제외한 인간 이전에 있었던 고생물들의 진화에 대해서는 개방적이었다 [11]. 하지만,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으니 이는 바로 1960년대부터였다. 20세기에 갑자기 등장한 이름도 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운동 (Seventh-Day Adventist Movement) 으로 인해 모든 것이 불과 100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안에 바뀌어 버린 것이었다. 이들은 일요일나 교회 나가는 이들은 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라 주장한 사이비 이단들로, 그들의 여선지자 엘렌 화이트 (Ellen G. White, 1827-1915년) 의 환상과 예언은 그들 사이에서 성경과 동등한 수준으로 여겨진다. 엘렌은 자신이 신의 환상을 보았으며, 그 환상 가운데 자신이 창조 주간으로 돌아가서 모든 것이 문자 그대로 24시간인 6일 안 동안에 창조되었고, 이후 오늘날 보이는 그랜드 캐니언과 같은 암석층을 퇴적시킨 세계적인 대홍수로 세상이 파괴되었음을 보았다고 주장했고, 이것이 재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교인 중 하나이자 정규적인 교육과정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조지 프라이스 (George McCready Price, 1870-1963년) 에 의해 오늘날 창조론자들이 따르는 젊은 지구론과 홍수 지질학 (Flood Geology) 으로 체계화되었다 [11]. 프라이스는 기나긴 교회사 동안 이어진 오랜 지구론과 고생물학을 “고고학자들과 고생물학자들은 다윈과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년)의 색안경을 통해서 본다”라며 격하하고 왜곡하였다 [11]. 정말 웃기게도 이런 프라이스와 그가 추종하던 엘렌은 지구의 나이에 대해서만 6000년이라 주장했을 뿐, 우주의 나이에 대해서는 6000년이라 하지 않았는데, 이는 엘렌이 환상 가운데 지구와 지구의 생명만이 6000년이 되었을 뿐, 그 이전에 생명을 가진 다른 더 오래된 행성들이 있었음을 보았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11]. 그러다가 1954년, 버나드 람 (Bernard Ramm) 이라는 사람이 기독교인들로 이제까지 받아들여지던 간격 이론과 재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젊은 지구론과 같은 견해를 버리고 더 점진적인 창조론적 해석을 따르도록 격려하기 위해 프라이스의 영향력을 과장하고, 그의 홍수 지질학 및 젊은 지구론을 비판하는 책을 냈는데, 그의 책은 그의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11]. 그의 책은 과학과는 거리가 먼 존 위트콤 (John Whitcomb Jr.)라는 젊은 신학자를 고무시켰다. 존은 프라이스의 견해에 대한 반응과 옹호로 박사 논문을 썼고 이를 책으로 출판하려 하였으나, 과학과는 아무런 관계나 경험도 없던 존의 논문을 출판하는 것을 출판사는 거절했고, 이 때문에 존은 자신의 견해를 지지하고 또 더 나아가 젊은 지구론을 옹호하여 책을 공동집필할 과학자를 찾았고, 모든 지질학자들에게 거절당한 끝에 지질학과는 거리가 먼 수력 공학 박사 학위를 가진 헨리 모리스 (Henry Morris)에게 연락이 닿아 책을 집필할 수 있게 되었다 [11]. 수십 년이나 되어 학계에서는 더 이상 비판할 가치도 없다고 여긴 프라이스의 주장을 재활용하는 것은 수치스럽다고 여겨 그의 주장을 많이 활용하면서는 완전히 따르지는 않는 방식으로 존과 헨리에 의해 새로운 이론, 곧 젊은 지구론이 탄생하게 되었다 [11]. 그들은 엘렌의 추종자는 아니었기에 우주도 6000년 밖에 안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학계나 학자들의 검증도 없이 1961년 The Genesis Flood라는 젊은 지구론과 홍수 지질학을 기반으로 한 책을 출판했고, 프라이스의 이론을 재활용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학계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11]. 그들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진짜 문제는 지질 데이터의 다양한 세부 사항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문제들에 과하여 그분의 말씀을 통해 계시하신 것일 뿐입니다”라는 되도 않는 소리를 하였고,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1]. 그리고 그렇게 1960년대를 기점으로 기독교의 창조론은 젊은 지구론으로 뒤바뀌었다.
한국 역시 프라이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유신진화론과 오랜지구론의 경우, 그 역사가 일제강점기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해방 전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하게 된 평양의 평양신학교(평양의 장로회신학교)에서 강의하던 선교사 어드먼(W.C.Erdman; 어도만)과 레이놀즈(W.D.Raynolds; 이눌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중 어드먼이 평양신학교 신학논문집 《신학지남》에서 유신론적 진화론을 소개한 것이 무려 1920년의 일이었으며, 어드먼은 북장로교 출신 선교사로서 구약신학을 공부했고,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진 인물이었다.
한편 신학 권위자였던 박형룡이 프라이스의 불쏘시개 저작물들을 접하면서, 반진화론 입장으로 기울어졌고, 장로회 신학자의 의견을 버리고 이단 출신 유사과학자에게 가서 붙었다. 그리고 그 이후 한국창조과학회가 창설되고 내부적으로 숙청 교통정리가 이루어지자, 한국의 오랜 지구론과 유신론적 진화론은 씨가 마르게 되었다. 심지어는 "처절한 영적전쟁을 치르는 말세의 교회에 양의 탈을 쓴 이리가 들어왔다", "세상과 타협한 유신진화론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는 등의 비난을 받게 되었다.
※ 한국의 유신진화론과 창조론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신과 진화 - 한국의 유신진화론 논쟁 - 최태연 (천안대학교 기독교학부).
생각보다 역사가 짧은 이론이었지만, 그 영향은 무시 못할 수준으로 큰 이론이었다. 다행이도, 공교육의 확대로 점차 이를 따르는 사람의 수는 줄고 있지만, 오늘날까지 기독교를 좀먹고 있는 이론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한 여자로부터 탄생해 남자들의 수정을 거친 이론은 오늘날 그들이 따르는 예수라는 자를 가장 욕되게 하는 이론이자, 그동안 존재했었던 지구 연대기에 대한 자유도를 없애버린 강박적인 이론이다.
※ 개인적으로 John H. Walton의 <The Lost World of Genesis One: Ancient Cosmology and the Origins Debate (The Lost World Series Book 2)>와 <The Lost World of Adam and Eve: Genesis 2-3 and the Human Origins Debate (The Lost World Series, Volume 1)> 그리고 <Ancient Near Eastern Thought and the Old Testament: Introducing the Conceptual World of the Hebrew Bible> 등의 여러 책들을 구매하고 다 읽기 보다는 Ben Stanhope의 <(Mis)interpreting Genesis: How the Creation Museum Misunderstands the Ancient Near Eastern Context of the Bible>을 구매하여 읽는 것을 추천한다.
참고:
[1] Mark, Joshua. Yamm.
[2] John Walton, The Lost World of Genesis One, p. 24.
[3] John Sailhamer, Genesis Unbound: A Provocative New Look at the Creation Account, pp. 38-40.
[4] David Tsumura, Creation and Destruction: A Reappraisal of the Chaoskampf Theory in the Old Testament, pp. 9-35.
[5] InspiringPhilosophy, Genesis 1a: And God Said!
[6] Robert D. Holmstedt, The Restrictive Syntax of Genesis i 1 Vetus Tetamentum 58 (2008) 56.
[7] Kenneth, A. Methews, The New American Commantary: An Exegetical and Theological Exposition of Holy Scripture, Genesis 1-11:26, Vol. 1A, pp. 128-129.
[8] Ancient Near Eastern Thought and the Old Testament Second Edition, John H. Walton, pp. 154-155.
[9] The Ugaritic Baal Cycle, pp. 592-594
[10] Richards S. Hess, Israelite Religions: An Archaeological and Biblical Survey, p. 184.
[11] The origins of Young Earth Creationism https://youtu.be/RLcNTAi0Cw4
[12] Brandon J. O' Brien and E. Randolph Richards, Misreading Scripture with Western Eyes: Removing Cultural Blinders to Better Understand the Bible, pp. 137-152.
[13] Hugh Ross, Navigating Genesis (Reasons to Believe, Covina, CA: 2014), p.53.
[14] Hugh Ross, Navigating Genesis (Reasons to Believe, Covina, CA: 2014),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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