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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서 느부갓네살의 나무 환상(다니엘 4:1-18)과 요셉에게 곡식을 사기 위해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왔다는 말씀 구절(창세기 41:57)을 통해 구약 속 세상은 근동에 한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사실과 성서에서 “온 땅 (כל ארץ)”이라는 표현이 창세기 2:11과 13:9과 41:57, 사무엘상 14:25과 사사기 6:37에서 국지적인 장소를 의미하는데 사용되었다는 사실, 신약에서도 노아의 대홍수 사건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세상 전체가 아니라 죄인들의 세상을 멸하기 위함이었다는 것 (베드로전서 2:5-6), 잠언 30:16에서도 물로 세상을 채울 수 없다 기록하였다는 것, 그리고 창세기 6-9에서 산으로 번역된 "הר"이 대체로 산보다는 낮은 언덕들을 의미하였다는 것은 노아의 대홍수가 산들을 뒤덮는 세계적인 대홍수가 아니라 작은 언덕이나 일부 평지만 뒤덮은 작고 국지적이었던 사건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하며, 이를 암시하기까지 한다. 이같이 굳이 대홍수를 세계적이라 해석할 필요는 없으며, 충분히 국지적으로 해석해도 되고, 오히려 그렇게 해야 과학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더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신화들의 묘사까지 고려한다면, 그리고 가장 고대의 기록을 본다면, 국지적이었다는 것을 확실시 할 수 있다.
- 참고로, 민수기 24:22에서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속한 부족인 겐족속이 가인의 후손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가인과 겐은 후술하겠지만 사실상 같은 이름이다), 겐족속의 존재 역시 성서 속 대홍수가 국지적이었음을 암시한다. 창세기 15:19에서 아브라함의 시대에도 가나안에 있었던 부족들로 언급된다는 사실은 이드로를 포함한 이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인 미디안으로 불리기도 하였지만 아브라함 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미디안과는 무관한 부족이었음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초기 유대 미드라시(Midrash Genesis Rabba 23.3)에서는 가인의 후손인 라멕의 딸 나아마를 노아의 아내로 기록하는데, 이는 셋의 후손만 살아남았다는 해석 역시 유대인들의 해석과는 모순된다는 것을 보여주는듯 하다.
다시 돌아와 대홍수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성서의 기간과 달리 성서보다 훨씬 이전의 기록인 “길가메시 서사시 Epic of Gilgamesh”와 “아트라하시스 서사시 Epic of Atrahasis,” 그리고 수메르 시대의 “에리두 창세 신화 Eridu Genesis”는 대홍수의 기간을 모두 7일로, 그리스의 데우칼리온(Deucalion) 신화는 8일로 기록하는데 [1], 이는 오늘날에도 일어나는 일반적인 소규모 홍수가 지속되는 기간과 거의 동일하다.
※ Neo-Assyrian clay tablet. Epic of Gilgamesh, Tablet 11: Story of the Flood. Known as the "Flood Tablet" From the Library of Ashurbanipal, 7th century BC.
그리고 가장 고대의 기록들에서는 대홍수의 영웅이 엄청난 규모의 방주가 아니라 자신의 집을 이용하여 방주를 건축하는 내용이 나온다. BC 7세기의 기록인 길가메시 서사시의 11번째 토판에서는 지혜의 신 엔키가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이 사는 갈대 집으로 와 갈대 벽을 통해 그에게 대홍수가 있을 것이니 그의 갈대로 만들어진 집을 헐고 이를 이용해 갈대로 된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BC 18세기의 아카드어로 기록된 서사시인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에서는 길가메시 서사시와 동일하게 엔키가 아트라하시스에게 대홍수를 알리기 위해 그가 사는 “갈대-오두막”의 벽을 통하여 말을 하였으며, 그에게 그가 살고 있는 “갈대-오두막”을 헐고 이를 이용해 “방주”를 만들고 “역청”을 그 방주의 안팎에 칠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보다 고대의 기록인 수메르 시대의 에리두 창세 신화도 동일하게 지우수드라가 엔키를 통해 대홍수가 올 것을 경고받고 갈대로 된 집을 이용해 방주를 만든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창세기의 경우, 통나무를 이용해 방주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원어를 분석한다면, 이들과 마찬가지로 갈대와 갈대로 된 오두막을 해체하여 방주를 만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창세기 6:14의 방주의 재료로 언급되는 “고페르 גפר” 라는 단어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 해당 구절에서만 사용되며, “그 안에 방들을 만들고”라는 구절은 히브리어 전치사가 없고, “방들”에 사용된 “킨님 קנים” 이라는 단어는 해당 구절에서만 사용된 단어이다. 그리고 '역청'에 사용된 단어인 “코페르 בכפר”는 역청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아니다. 그래서 롱맨과 월튼은 이 세 단어들이 히브리어가 아닌 아카드어를 옮겨적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는데, “고페르 goper”는 “해체된(?) 갈대-오두막”을 뜻하는 “구프루 gupru,” “킨님 qinnim”은 “갈대들”을 뜻하는 “카니 qa-ne-e,” “코페르 koper”는 “역청”을 뜻하는 “쿠프루 kupru”였을 것이라고 한다 [2]. 이는 창세기도 메소포타미아 신화와 마찬가지로 대홍수의 영웅이 자신의 집을 해체하여 갈대로 방주를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 참고로, 갈대만 사용한 것은 아니며, 길가메시 서사시와 아트라하시스 서사시는 모두 갈대와 역청 뿐 아니라 방주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 나무를 사용하였다고 기록한다.
물론, BC 7세기의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는 방주의 규모가 노아의 방주에 거의 근접할 정도로 거대하며, 갈대 집을 해체하여 방주를 만들었다는 성서의 기록에서 함께 언급되는 노아의 방주의 크기도 터무니 없을 정도로 거대하지만, 이는 시간이 지나며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더 고대의 기록인 둥근 방주 토판이라고도 알려진 BC 18세기의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의 토판에서는 이의 반도 되지 않는 길이 60m, 높이 7m 정도의 축구장의 절반만한 크기로 나오며, 이보다도 더 이전의 기록인 에리두 창세 신화에서는 크기도 나오지 않고, 그저 갈대로 된 집을 해체해서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자기와 자기 가족이 겨우 살던 갈대 오두막 집을 부수어 방주를 만들었을테니 그런 방주가 성서나 길가메시 서사시의 내용처럼 거대할리는 없다. 당연히 그보다는 작았을 것이며, 가족들과 가축들 정도만 들어갈 수 있는 정도였을 것이다.
벽아, 벽아! 갈대 벽아, 갈대 벽아!
아트람하시[스여],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 영원히
집을 부숴라! 배를 지어라! [재]산을 포기해[라! 그리고]
생명을 구해라!
너는 배를 지어야 한다. 그것을 [그]려라. 그리고
둥근 것의 그림을.
그 길이와 [그] 너비를 동일하게 하라.
그 넓이가 1 이쿠(IKU: 60미터 X 60미터)가 되게 하라. [그] 벽들(의 높이가) 1 닌단(NINDAN: 7미터)이 [되게] 하라
칸누(Kannu)-줄 아슐라(ašlu)-줄을 네가 보았다. [...]
그가 (길게 갈라진) 나뭇잎들과 종려 섬유를 짜게 하라.
네가 3600 X 4 + 30 (쑤투 sūtu: 8-9 리터) 말하고 그가 먹으리라.
내가 그 안에 기둥(rib) 30개를 세웠다.
그것들(기둥들)은 1 파르식투(Parsiktu) 정도 두껍고 10닌단 정도 길었다.
내가 지지대 3600개를 그 안에 고정했다.
그것이 1/2 (파르식투) 정도 두껍고 1/2 닌단 정도 길었다.
내가 그 선실들을 위와 아래에 설치했다.
내가 역청을 1 우바누(ubānu: 1센티미터) 정도 그 바깥을 위해 나누었고,
내가 역청을 1 우바누 정도 그 안을 위해 나누었고,
내가 역청을 1 우바누 정도 그 선실들에 쏟아 부었다.
내가 쿠프루-역청 3600 X 8 (쑤투)를 가마 안에 넢었고,
역청 3600 (쑤투)를 그 안에 쏟아 부었다.
그 역청이 내게 가까이 차오르지 않았고,
내가 돼지 기름 5 우바누 정도를 첨가했다.
내가 가마를 [...] 동일하게 넣었고
버드나무와 [...] 나무 [...]
내가 함께 누웠고 [...] 기쁘게 [...]
그들이 그 배로 들[어갔고 ...] 가[족] 친지 [...]
즐겁게 [...] 친척 [...]
그리고 [...] 하는 일꾼 [...]
충분히 먹고 [충분히] 마셨다.
[...] 나의 [...]
[...] 나의 [...]
[...] 내 입술 [...]
[...] 좁은 [...] 내가 누었다.
내가 지붕으로 올라갔다. 내가 [기도했다.] 나의 주 씬 신께.
괴로움은 끝나기를! [당신이 지]나가지 [않습]니다.
[...] 암흑
[...] 나의 [...] 안에
씬(= 난나) 신이 [그의] 보좌에서 전멸을 [맹세하십니]다.
그리고 어두운 [날에] 황폐[함을 ...]
그리고 [광]야[에서] 들짐[승이 ...]
둘씩 배로 [...]
주(KAŠ: 술을 담는 항아리) 5 (단위) [...]
열하나 또는 열둘이 기다리며 [...]
쉬크부(ši-iq-bi)-풀 3 (단위)를 내가 [...]
여물 1/3 (단위)를 [...] 쿠르딘누(kur-din-nu)-풀
내가 기리마데(gi-ri-ma-de-e)를 위한 돼지 기름 1 우바누를 여러 번 언급했다.
그들 [나의] 장인들(ummiānu)이 숨긴 30 구르(GUR) 중에
그 때 내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문의 틀을 막아라!
- 주전 18세기의 <아트라하시스 서사시> 토판 / 둥근 방주 토판 -
<참고> https://youtu.be/HOPoX2g2DKk
방주가 산에 정박했다는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에리두 창세 신화와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에는 산에 정박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지만, 후대의 길가메시 서사시부터는 산에 정박했다는 내용이 나오며,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는 이라크의 니무쉬(Nimuš) 산에 안착했다고 기록하며 [1], 이보다 더 후대의 기록인 성서에서는 니무쉬 산보다 훨씬 북쪽 튀르키예에 있는 더 높은 산인 아라랏 산에 안착했다고 기록한다.
기원전 9세기 이후에 제작되었을 바빌로니아의 세계 지도(Babylonian Map of the World) 토판에는 앞면에는 우라르투(Urartu; 성서 속 아라랏/아라라트) 지역을 포함한 여러 지역들과 섬들과 강들과 바다가 묘사되었으며, 이들의 지명들을 기록하였고, 뒷면에는 토판의 앞면의 삼각형으로 그려진 일곱 섬/지역(나구 Nagu)들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 설명들 가운데 앞면에서 우라르투 지역에서 바다를 건너면 나오는 네번째 섬에 대한 설명에 따르면, 네번째 섬에는 파르식투/파르식툼(Parsiktu/Parsiktum)처럼 두꺼운 나무로 된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 ("Its wooden [...] as thick as a parsiktu"). 이러한 설명 곧 파르식투처럼 두껍다는 이야기는 기원전 18세기의 아트라하시스 서사시 토판(일명 둥근 방주 토판)에서만 유일하게 등장하는 표현인데, 이 때문에 어빙 핀켈(Irving Finkel) 교수는 이 나구가 방주가 안착한 곳에 대한 설명이었을 것이라 제시하였다. 그는 아래의 다이어그램에서도 확인되듯이 성서 속 방주가 안착한 곳은 이 나구가 아니라 우라르투, 즉 아라라트 지역의 산들 중 하나인데, 이는 이 네번째 나구가 우라르투 지역에서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맞댄 것처럼 묘사되었기 때문에 아라라트 지역의 산들을 넘어 있는 곳이라 인식되다가 후대의 바빌로니아 유수기 (기원전 6세기) 동안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와 같은 바빌로니아의 문학(다니엘 1:4)을 접한 유대인들에 의해서 아라라트 지역의 산들 중 한 곳으로 인식되게 된 곳이라고 주장하였다. 결론적으로, 위에서는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에 방주가 산에 안착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였지만, 이를 바탕으로 보면, 섬 혹은 섬의 산에 안착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당시 우라르투 지역을 세상의 끝으로 인식했던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우라르투를 넘어서는 바다가 있고, 그 바다를 건너서는 세상의 끝, 곧 땅의 끝들인 일곱 섬/지역들이 있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방주가 안착한 곳을 우라르투의 산들과 바다를 넘어 있는 섬으로 보았던 것이지, 오늘날의 우리가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라르투 지역의 북쪽에 바다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라르투를 넘어서는 또 다른 땅인 오늘날의 조지아와 아르메니아와 같은 국가들이 있을 뿐이다.
- 지도에서 비트야킨(Bit Yakin)은 에리두와 우르가 있는 메소포타미아 최남단 지역이며, 우라르투, 아시리아와 데르(Der)와 엘람의 수도인 수사는 모두 바빌론을 기준으로 티그리스 강 건너편의 도시와 세력들이지만, 지도에서는 티그리스 강이 표현되어 있지 않으며, 유프라테스 강 만이 표현되어 있다. 지도 속 산은 자그로스 산맥을 나타낸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우라르투가 자그로스 산맥 너머로는 존재하지 않는 왕국이며, 자그로스 산맥으로부터 유프라테스 강이 발원한다고 믿었다. 실제로 유프라테스 강은 자그로스 산맥에서 발원하지 않으며, 우라르투 왕국의 범위는 자그로스 산맥을 넘는데도 말이다.
- 지도에서 하반(Habban)은 카시트인(Kassite)들의 수도와 땅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두르-카리갈주(Dur-Kurigalzu)를 가리킨다. 두르-카리갈주는 바빌론과 아시리아 사이에 위치하였지만, 지도와 달리 유프라테스 강 서쪽이 아니라 동쪽, 곧,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위치하였다.
이렇듯 가장 고대의, 가장 원형에 가까운 이야기를 보면, 방주가 산에 안착했다는 내용은 존재도 하지 않고, 홍수가 지속된 기간은 대략 일주일이었으며, 방주는 갈대로 된 오두막의 크기 정도로 작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나아가 대홍수 신화의 기원이 대홍수가 아니라 국지적인 홍수였고, 이것이 문명을 전파한 최초의 문명 수메르 문명의 사람들에 의해 유명해진 것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세계 각지에 홍수 신화가 존재한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북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홍수 신화는 유럽인들의 이주와 기독교의 전파 이후에 형성된 것이며, 북유럽의 홍수 신화 역시 기독교의 전파 이후에 생긴 것이다. 그리고 중국의 홍수 신화에는 방주나 홍수로부터 살아남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등장조차 하지 않고, 그저 강의 범람으로 인한 홍수를 막기 위한 작업에 대한 이야기만 하기에 성서의 홍수 이야기와는 무관한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이집트 역시 비슷한 이유로 성서의 홍수 이야기나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신화와는 무관하다. 이러한 것들을 고려한다면, 홍수 신화는 전세계에 존재했겠지만은 방주를 타서 살아남고 비둘기와 까마귀를 내보냈다는 대홍수의 영웅에 대한 홍수 신화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인도에만 존재했었으며, 이들 가운데 원조격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자 신화가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신화이기에 홍수 신화가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 아래 영상들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정확히 언제 홍수가 일어났을까? 최근 미디어에서는 노아의 홍수와 수메르의 홍수 신화가 약 13,000-8500년 전 사이에 있었던 홀로세 초기의 급격한 해수면 상승으로, 오늘날의 페르시아만, 아라비아 동남부, 그리고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포함한 메소포타미아 지역 전체를 뒤엎은 사건에 기원을 두었다고 주장되지만 [4], 이는 문제가 있는 주장이다. 홍수의 범위가 과장된 것은 당연한 것이며, 실제로는 페르시아만 지역만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오늘날의 바다가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해당 가설은 학계에서는 인정 받지 못하는 가설이며, 그리 설득력이 높은 가설도 아닌데, 이는 고-히타이트 왕국과 같은 메소포타미아 외의 지역이자 해당 홍수설이 제시하는 홍수의 생존자들이 거주했을 지역의 사람들에게 그 어떠한 홍수와 관련된 신화가 없기 때문이다. 신화들을 분석한다면, 홍수 신화는 초기에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인 수메르 지방에만 국한되었기에 홍수의 범위 역시 이를 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이유에서 흑해 홍수설도 설득력을 잃는다.
- 이외에도 소행성 또는 혜성의 파편이 그린란드를 강타하면서 화재와 같은 자연 재해가 북미 대륙을 덮쳤고, 빙하가 녹으면서 페르시아만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급격한 해수면의 상승이 있었으며, 플라이스토세 후기(Late Pleistocene: 129,000-11,700년 전)의 거대 동물(Megafauna)들의 대량 멸종을 초래했다고 이야기하는데 (일명 "영거 드라이아스기 임펙트 가설 Younger Dryas impact hypothesis") [21], 소행성이 충돌한 곳이 미국 대륙 본토로부터 너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북미 대륙에 재앙적인 화재나 홍수를 일으켰을 가능성은 상당히 적은 편이다 [21]. 그리고 플라이스토세 후기의 거대 동물들의 대량 멸종은 인간으로 인함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며, 소행성 충돌이나 이의 여파로 인한 자연 재해의 결과물이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호주 대륙의 동물들의 대량 멸종은 정확히 인류가 호주 대륙에 도래한 시기(50,000년 전)와 일치하며 호주 대륙의 대형 포유류들은 더 후대에 인류가 정착하기 시작한 테즈메니아 섬의 대형 포유류들보다 먼저 멸종하였고 [22], 북미와 남미 대륙 역시 인류가 도래한 시기부터 대형 포유류들의 개체수가 점진적으로 줄기 시작해 이후 완전히 멸종되었다 [23]. 또한, 동시다발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물난리가 난 것은 아니었다. 북미 대륙의 미줄라 호수(Missoula Lake)가 1만 5천 년 전에서 1만 3천 년 전 사이에 홍수를 경험했지만, 대륙이었던 순다랜드(Sundaland)는 1만 8천 년 전부터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해 서서히 물에 잠기기 시작해 약 7천 년 전(기원전 5000년대)에는 완전히 물에 잠겨 오늘날의 인도네시아 섬들로 변하게 되었으며 [24], 도거랜드(Doggerland)는 기후가 한층 더 따뜻해진 1만 2천 년 전부터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해 서서히 물에 잠기기 시작해 8500-8200년 전 (기원전 6500-6200년대) 사이에 완전히 물에 잠겨 오늘날의 영국과 스코틀랜드로 변하게 되었다 [25]. 그렇기에 매체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인 파괴적인 홍수가 일어났다고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
※ The Historicrat, Gilgamesh and the Flood:
이런 이유에서 학계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대로 수메르의 도시 슈루팍을 덮친 홍수를 신화의 기원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설득력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 Epic of Gilgamesh,” “아트라하시스 서사시 Epic of Atrahasis,” 그리고 “에리두 창세 신화 Eridu Genesis” 등 세계 홍수 신화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신화들은 모두 대홍수를 도시 슈루파크/슈루팍(Shuruppak)과 관련된 사건으로 기술하며, 방주를 만들어 살아남은 영웅을 슈루팍의 사람/왕으로 기록하기에 [1] 고대 수메르의 도시 슈루팍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젬뎃-나스르기가 끝나갈 무렵인 기원전 3000-2900년 사이의 슈루팍에서는 홍수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43-44]. 현대의 거의 모든 학자들도 바로 슈루팍을 덮친 이 비극적인 홍수가 노아의 대홍수 신화의 기원이었으리라고 보고 있다.
- 정확히 말하자면, 슈루파크의 홍수가 지우수드라의 역사성이나 신화의 역사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기에 기원전 3100년대의 우르 홍수 [1, 44-45], 기원전 2900년대의 우루크 홍수와 키시 홍수 [1], 기원전 2750년대의 슈루팍 홍수 [1, 47] 등 반복적으로 수메르인들의 생활을 위협했던 홍수에 대한 기억이 구전으로 전승되다 후대에 이를 바탕으로 방주를 타 세상을 멸망시키는 홍수로부터 살아남은 영웅 지우수드라의 이야기를 형성하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현재는 슈루팍의 대홍수는 기원전 2900년대보다는 기원전 2750년경의 사건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1, 47], 우르의 홍수[44-45]는 기원전 3500년대보다는 기원전 3100년대의 사건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
- 주류 학설은 아니지만, 흥미롭게도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가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신화로부터 파생되었다는 설을 지지하는 학자들 가운데 일부 학자들은 창세기에서 노아의 선조로 구분되어 언급되는 에녹을 노아와 동일인물인 우트나피쉬팀으로부터 파생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에녹과 동일하게 우트나피쉬팀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신들의 낙원이 딜문(Dilmun)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26]. 에녹은 <라멕 계시록 / 창세기 외경 Apocalypse of Lamech / Genesis Apocryphon (1Q20)>이라는 이름의 기원전 3-1세기에 저술된 사해문서와 에녹 1서 106:8에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낙원인 파르바임(Parvaim פַּרְוַיִם)에 거주하며 아들인 므두셀라가 자문을 구하러 왔을 때 대답해주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영생을 얻은 에녹이 자신을 힘겹게 찾아온 므두셀라에게 조언을 해주는 모습은 <길가메시 서사시> 속 우트나피쉬팀에게 영생의 방법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역경을 넘어온 우루크의 왕 길가메시(기원전 29-27세기 사이의 인물)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특히, 사해문서의 에녹서의 외경인 거인서(Book of Giants)의 4Q530 Col. 2와 4Q531 Frag. 1에 메소포타미아의 기록들에서 지우수드라의 홍수 이후의 인물로 기록된 우루크의 역사적으로 실존했음이 증명된 왕인 길가메시를 포함한 거인들이 자신들의 아버지를 시켜 에녹을 찾아가 지혜를 구하게 하는 장면까지 나오는데, 이는 명백히 길가메시 서사시의 영향을 받은 모습을 보여준다. 아르예 아미하이(Aryeh Amihay) 박사에 따르면,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영생을 얻은 자가 대홍수로부터 방주를 만들어 살아남은 이이기도 하다는 메소포타미아 서사시의 내용이 성서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고 이 때문에 우트나피쉬팀이 영생을 얻은 인간 에녹과 대홍수로부터 살아남은 인간 노아로 분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26]. 에녹이나 노아라는 인물이 문학적 관점에서는 우트나피쉬팀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은 거의 정설이지만, 이것이 에녹과 노아라는 인물이 우트나피쉬팀으로부터 파생되었다는 것은 주류 의견이 아니며, 반박하는 학자들도 많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하도록 할 것이다.
- 엔메두르안키와 관련된 전설은 수메르 시대나 고 바빌로니아 시대가 아니라 한참 후대인 이신 제2왕조 시대의 네부카드네자르 1세(Nebuchadnezzar I, 기원전 1121-1100년)의 치세 때 만들어졌는데, "엔메두르안키 전설(Enmeduranki legend)" 또는 "왕권의 씨앗 The seed of kingship tablet K 4874"으로 알려진 이 신화는 네부카드네자르 1세가 수메르의 슈루팍의 홍수가 있기 전에 씨파르/시파르의 왕인 엔메두르안키와 그가 혈통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었으며, 그가 엔메두르안키의 자손임을, 그리고 마르둑 신이 자신에게 완전한 지혜를 부여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이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면서 앞서 겐족을 언급한 것을 기억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겐족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겐족은 모세의 장인이자 제사장이었던 이드로(사사기 1:16)가 속한 야훼 신앙과 관련된 민족으로, 창세기 15:19에서는아브라함의 시대 때부터 존재했다고 언급되며, 사사기 1:16과 4:11, 그리고 6:2에 의하면 여호수아의 시대와 사사들의 시대 때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가나안 중부 고원지대까지 이주하였다고 한다. 미디안인이라고 불리기는 하였지만, 미디안의 족보에 등장조차 하지 않는데 (이스마엘 족속도 미디안인으로 불렸었다), 이들은 민수기 24:22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창세기 4장에 등장하는 가인의 후손이며, 성경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겐족을 통해 야훼 신앙을 받아드렸다는 것에 부합하게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죄로 야훼에 의해 광야로 추방된 직후 아담과 이브의 새 아들 셋의 자손 시대에 사람들이 처음으로 야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또, 창세기 4:20-22에서 가인의 후손 야발이 장막에 거하며 가축을 치는 유목민의 조상으로, 그의 형제 두발 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대장장이로 기록된 것에 부합하게 원시 아라비아 (proto-Arabia)의 부족 중 야금술과 구리 제련과 청동 생산에 종사한 부족이었다. 실제로, 다음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고고학자들은 겐족을 꾸레이야 문화 (Qurayyah/Qurraya culture)와 연결짓는데, 아라비아 북서부의 도자기인 꾸레이야 도자기를 포함한 이들의 흔적은 두 개의 주요 아라바(네게브 남동부의 사막 지역)의 구리 광산 지역인 팀나(Timna)와 파이난(Faynan)에서 발견되었고, 남부 레반트에서도 발견되었다. '겐족속'이라는 단어 'קֵינִי (qênî / Kay-nee)'는[49] 아담과 하와의 아들인 '가인'의 이름인 ' קַיִן (qayin)'[50]에서 파생된 부칭(patronymic)인데, 단어 철자 קַיִן (qayin / Kah-yin)[50]은 또한 "치다 strike"를 의미하는 단어 קוֹנֵן (qônēn / Koon)에서 파생된 창 קַיִן (qayin / Kah-yin)을 의미할 수 있다. 학자들은 겐이라는 이름을 '대장장이 smith'라는 용어에 연결하기도 하는데, Archibald Henry Sayce(1845-1933)에 따르면 '겐족 Kenite' 또는 '겐니 Qéní' 라는 이름은 '창'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가인 Qayin'과 동족어(cognate)인 '대장장이'를 의미 하는 아람어 단어와 동일하다 [53]. 그렇기에 겐족이라는 이름은 성서 속 가인의 후손들에 대한 묘사에 부합하기도 하다. 또한, 다음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이 레반트 남부와 시나이 광야의 유목민족은 기원전 14세기의 이집트의 기록의 "야후Yahu)의 샤수(Shasu)", 곧, "야훼의 샤수"라는 이름으로도 등장하는데, 이는 이들이 야훼 신앙을 따랐음을 보여주며, 나아가 학자들로 하여금 이들을 겐족과 동일시하게 하였다. 참고로, 해당 기록은 야훼 신앙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기도 하다.
- 참고로, 단어 철자 קַיִן (qayin / Kah-yin)[50]는 또한 악기에서 음을 치는 것을 의미하는 데에도 사용되며, 성경의 후기 책에서 이 단어는 탄식 , 비가 , 또는 슬픈 성가 의 일종 명사 나중에 장례식에서 노래하거나 통곡하는 동사가 된다.
- 참고로, 겐족이 창세기에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역대상 2:55을 근거로 유다 지파의 일부라고, 가인의 후예는 아니라고 주장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역대상 2:55에서 겐 족속으로 묘사되는 살마의 자손들로 인해, 겐 족속은 유다 족속처럼 보이지만, 겐 족속은 창세기부터 등장하며, 사사기 4:11에서는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호밥)의 자손으로 기록한다. 그리고 이들이 간과하는 가장 큰 사실은 바로 이 살마의 조상인 갈렙이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에서 모두 창세기 15장에 겐족과 함께 등장하는 그니스 족속이라는 이방인으로 기록되고 여분네라는 자의 아들로 기록됨에도 불구하고, 역대상 2장에서는 그를 유다 지파의 사람이자 유다의 손자 헤스론의 아들로 기록한다. 겐 족속이나 그니스 족속이나 모두 유다는 물론 이스라엘과는 아예 무관한 가나안의 족속인데, 이들은 역대상이 되어서는 유다 지파의 일부로 묘사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성서 학자들은 갈렙이 문자 그대로 유다 지파 출신이 아니라 유다 지파의 여자와 결혼하여 그 가문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석하며, 겐족 사람들 역시 갈렙의 자손인 살마의 자손들과 혼인하였기 때문에 혹은 그 반대였기에 역대상 2:55에서 살마의 자손들이 유다의 자손들인 동시에 겐 족속으로 기록된 것으로 추정한다. 결론적으로 겐족, 그리고 그니스족은 유다 족속과는 기원적으로는 아예 무관한 이들이라는 것이다.
셋과 에녹 역시 가인과 마찬가지로 아라비아 지역의 유목민들과 관련된 조상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민수기 24:17에서는 셋족(Sethite)이 겐족과 함께 광야의 유목민족으로 등장하며, 창세기 25장에서는 에녹/하녹족(Hanochite)은 미디안 계통의 민족으로 묘사되는데, 특히 셋족이 창세기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이들이 야훼 신앙을 모르던 이스라엘과는 확연히 달랐으며, 야훼 신앙을 고수하던 겐족과 관련된 부족이었음을 보여준다. 셋족은 고대 이집트의 기록에 등장하는 슈투(Shutu / Sutû )와 동일한 민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54]. 고대 이집트의 기록에서 슈투는 샤수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성서의 셋족과 마찬가지로 가나안의 유목민으로 묘사되며, 베니-하산(Beni Hassan)의 중왕국 시대의 재상 크눔호테프 2세(Khnumhotep II)의 무덤의 힉소스 벽화로 알려진 벽화는 사실 "슈투 땅의 아아무 Aamu group from Shu"로, 슈투족을 그린 벽화이다 (힉소스는 그저 이방 땅의 통치자/왕자들이라는 뜻이다). 슈투는 기원전 19세기의 기록(베니-하산 무덤 벽화)에서부터 등장하기에 기원전 15세기부터 이집트 기록에 등장하는 샤수처럼 고고학적으로도 그 역사가 상당히 오래된 유목민 부족이었다.
- 기원전 14세기의 이집트의 기록인 아마르나 서신(EA 195)에서 다메섹의 왕 비르야와자(Biryawaza)가 하비루(히브리인)라는 용병집단-유목민족과 함께 고용한 용병집단-유목민족으로 등장하는 마리(Mari)와 테르카(Terqa)에 인접한 수훔(Suhum)을 중심으로 활동한 셈족 유목민이자 원시 아람인[57] 또는 아랍인[57]으로 추정되는 수테아인(Sutean)은 이집트 기록 속 슈투, 성서의 기록 속 셋족과 동일시되곤 하는데 [58], 수테아인들은 레바논, 시리아 사막, 메소포타미아 북부에서 활동하였으며, 팔미라(Palmyra)와 하부르 강 어귀에서 활동하던 유목민 집단인 알라무(Aḫlamū; 수테아인들과 비슷하게 기원전 18세기부터 역사에 등장함)의 일부라고 주장된다. 또한, 슈투, 셋, 수테아 모두 같은 어근에서 파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58].
또한, 가인의 후예 중 하나인 나아마(Naamah)는 욥기 2:11에서 욥의 친구 소발이 속한 부족으로 소개된다는 것과 여호수아 15:41에서 유다의 영토이자 그데롯과 막게다 인근의 도시, 곧 사해 동편의 유다 지역의 도시였다는 것을 고려하여 에녹, 셋, 가인과 마찬가지로 남부 지역의 유목민 부족 중 하나를 가리켰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 가장 초기의 이야기/전승 속 노아는 방주를 타 살아남은 홍수의 영웅이 아니라 포도주를 제작한 사람으로서 양조업자들의 시조로서 인식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가인의 족보(창세기 4장)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며 [55], 후대의 유대인들이 셋의 족보를 제작할 때 가인의 족보에서 에녹을 가져와 에녹을, 가인을 가져와 게난(카이난)을, 므후야엘을 가져와 마할랄렐을, 이랏을 가져와 야렛을, 므두사엘을 가져와 므두셀라를, 라멕을 가져와 라멕을, 나아마를 가져와 노아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가인의 족보 속 양치기의 시조인 야발을 가져와 아벨(헤벨 Hebel)을 만든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54-55]. 또, 가장 초기의 이야기에서는 에노스가 아니라 야훼 신앙의 전파자인 겐족의 시조 가인이 야훼라는 이름을 최초로 부른 인물로 여겨졌을 것이며, 후대에 셋의 우월한 혈통과 족보를 위해 에노스가 한 것으로 바뀌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되기도 한다 [56].
- 창세기의 홍수 후 노아의 자손들에 대한 족보에 대해서 원래는 셈, 함, 야벳이 아닌 가나안인과 히브리인의 시조 조상인 가나안과 에벨로 이루어졌을 것이라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창세기 10:21은 에벨의 모든 자손의 조상을 셈이라 어색하게 기록한다 [59]. 셈이 마치 후대에 외삽된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 [59]. 이는 셈과 에벨이 족보 내에서 가지는 위치가 동등함을 보여주며, 나아가 원래의 이야기에서는 에벨만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59]. 이외에도 함의 잘못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에도 가나안을 저주하는 것은 이야기의 원형에서는 함이 등장하지도 않고 가나안과 에벨만이 등장하며, 잘못을 저지른 자가 가나안이었음을 보여준다 [59]. 또한, 에벨의 자손들에 대한 말씀인 창세기 10:25는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동사와 목적어들로 인해 부패했는데 [60], 이는 셈을 외삽하고 에벨의 족보를 대대적으로 수정하고 편집한 과정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족보가 이렇게 에벨과 가나안에서 셈, 함, 야벳으로 변하게 된 것은 여호와 문서(Jahwist, Yahwist; J 문서)의 저자들이 그들이 살던 바빌로니아 유수기 또는 그 이후의 시대(페르시아 제국/헬레니즘 시대)의 세계관에 맞추어 이야기와 족보를 이전보다 더 세계적으로(글로벌하게) 넓히고 확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59]. 한 가지 덧붙이자면, 노아와 관련된 이야기 중 그와 함과 관련한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 속 크로노스(Kronos) 이야기를 완곡하게 표현한 헬레니즘 시절(또는 페르시아 제국 시대나 그 이후)의 유대인들만의 이야기에서 파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아는 신화 속 크로노스의 부친 우라노스와 마찬가지로 유일한 족장이자 아버지였으며, 노아의 막내 아들인 함이 그의 수치를 드러내는 뻔뻔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우라노스의 막내 아들인 크로노스는 아버지를 거세시키고 심지어 폐위시키기까지 하였고, 노아의 아들 야벳, 곧, 그리스인들의 조상으로 성서에 기록된 이 인물의 이름인 야벳은 그리스어 이아페토스/이아페투스(Iapetus)를 히브리어로 음역한 것이고 [61], 이아페토스의 자손인 데우칼리온은 노아처럼 방주를 만들어 홍수에서 살아남았고, 또한, 기원전 2세기에 작성된 유대인 작품인 세 번째 시빌라 예언서(시빌라 신탁, 시빌레의 신탁서, 시빌의 신탁; Sibylline Oracle, Book III)은 신화 속 크로노스를 포함한 티탄 신들이 역사적 영웅들에 기원을 두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여기서는 크로노스(Cronos), 티탄(Titan), 이아페투스(Iapetus)라는 세 영웅을 언급하고, 이들을 직접적으로 노아의 세 아들들과 동일시한다.
이외에도, 외경인 에녹서는 헬몬 산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묘사하고, 희년서에서 에녹의 장인으로 언급되는 다니엘은 다음 글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에스겔서에 등장하는 다니엘이자 고대 우가리트 문학에 등장하는 다니엘로, 그는 갈릴리 지역을 다스린 레바논의 하르나미유 부족의 왕이자 족장이었다는것은 앞서 언급했던 정보들에 더해 이야기들의 배경이 가나안이었음을 거의 확실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에덴이 어디에 있던, 아담이 최초의 인류이던 아니던 등 창세기의 여러 논란들을 다 제쳐 두고 말하자면, 아담과 하와 이야기 바로 다음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의 배경은 명백히 가나안이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대홍수 신화의 기원은 수메르 홍수 신화였을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가장 높으며, 오히려 홍수 신화를 유대인들이 로컬라이징하면서 자신들이 알고있던 겐(가인), 나아마(노아), 하녹(에녹), 셋 등의 이름을 부여한 것일 수도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 보편적이며, 노아의 홍수 신화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영향을 받았지만 가나안/이스라엘에 토착적인 신화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보는 학자들 역시 토착 신화는 홍수와는 무관한 내용이며, 홍수는 바빌로니아 유수기 때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신화를 가져오면서 외삽된 것으로 보고 있다 [62]. 당시에는 홍수 신화가 신화에 없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던 신화였기에 그리스 문명을 비롯한 근동 여러 문명들에서 홍수 신화를 베껴 자신들의 신화에 포함시켰기에 유대인들 역시 이렇게 홍수 신화를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62]. 창세기 8:21의 말씀은 홍수와는 무관해보이며, 오히려 기근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사야 24:6-7("그러므로 저주가 땅을 삼켰고 그 중에 사는 자들이 정죄함을 당하였고 땅의 주민이 불타서 남은 자가 적도다.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이 즐겁던 자가 다 탄식하며")을 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62]. 창세기 3장 속 아담의 저주는 다음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그가 에덴에서 쫓겨나 신의 보호 없이 비옥하지도 않은 농지에서 농사를 하여 고생하면서 먹고 살게 했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62]의 저자와 같은 학자들은 이를 기근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바빌로니아의 홍수 신화인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에서는 이와 유사하게 대홍수 이전에 신들이 기근을 내려 인류의 수를 줄이려 하였다고 기록한다 [62]. 이렇게 노아의 홍수 신화가 토착적이었지만 홍수라는 이야기 그 자체는 바빌로니아에서 수입한 것으로 보는 해석은 이러한 성서의 말씀 등을 고려하여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죄악으로 땅을 저주하셨으며, 이 저주, 곧, 기근의 저주는 노아 때까지 지속되었으나, 노아의 때에 비가 내리고,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땅을 저주하지 않으시겠다 말씀하시며 언약을 맺어주셨고, 이 덕분에 저주는 끝나고 저주로부터 세상을 구한 노아는 포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는 홍수와는 무관하고 오히려 땅과 관련된 이야기가 원형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그리고 이것이 여호와 문서(Jahwist, Yahwist; J 문서)의 저자들이 가지고 있었을 가장 원시적인 이야기였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62]. 개인적으로는 홍수 신화의 기원은 슈루팍의 홍수가 맞지만, 노아라는 인물은 메소포타미아와는 무관한 가나안 남부 광야의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 지우수드라(우트나피쉬팀)가 있는 딜문은 고바빌로니아 시대의 기록인 에리두 창세 신화(Eridu Genesis, 기원전 16세기)에서 동쪽에 있는 곳으로 묘사되며, 이에 부합하게 역사적으로 확인된 고대 딜문 왕국은 오늘날의 카타르와 바레인 지역에 위치해 있었지만, 에리두 창세 신화와 같은 시기의 기록인 고바빌로니아 시대의 길가메시 서사시(기원전 16세기)에서는 신아시리아 제국 시대의 길가메시 서사시(기원전 7세기)와 동일하게 지우수드라가 있는 같은 딜문을 서쪽에 있는 곳, 곧, 레바논에 있는 곳으로 묘사한다. 어느 쪽이 맞을까? 당연히 대부분의 학자들은 더 오래된 기록들인 수메르 시대의 기록들에서 확인되는 딜문은 오늘날의 카타르와 바레인 지역을 가리켰기에 딜문은 고대 딜문 왕국을 가리켰다고 보고 있다. 즉, 가장 초기의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신화 속 신들의 낙원 딜문을 레바논이 아니라 카타르와 바레인 지역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알룰림의 이야기와 아다파 이야기는 성서의 아담과 너무나도 닮아 있으며, 성서의 족보는 수메르 왕명록과 매우 유사하고, 대중에게 알려졌듯이 성서의 대홍수 이야기와 수메르의 홍수 신화는 동일한 기원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창세기의 배경을 민수기 24장과 정경도 아닌 외경인 에녹서와 희년서를 근거로 가나안 지역이었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또, 그렇다고 해서 민수기 24장, 외경들, 그리고 에덴을 레바논이나 시리아에 위치시키는 열왕기서와 이사야서와 에스겔서를 무시할 수는 없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의 학자들은 가인, 노아, 셋 등의 인물들은 가나안의 전승들이나 이야기에 기원을 두었지만 홍수 신화와 아담 이야기 등은 바빌로니아 유수기 시절(기원전 6세기)에 다니엘 1:4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유대인들에게 전해져 기존의 창세기 이야기에 더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고려하여, 성서를 역사적으로 본다면 두 가지 해석에 이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중 첫 번째는 종교계에서도 보편적인 견해로, 이름만 가나안 지역의 인물들의 이름(예: 가인, 노아, 셋)일 뿐 이야기의 기원은 메소포타미아라고 보고, 헤르몬 산과 에덴과 같은 요소들은 후대의 유대인들의 세계관이 투영되었기에 이야기의 배경이 수메르에서 유대인들의 고향인 레반트 일대로 바뀌게 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담은 알룰림과, 노아는 지우수드라와 동일시하고, 에덴은 앞서 딜문 또는 수메르 지역 어딘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인, 셋, 노아 등의 인물들은 이름 만 준 가나안의 고대인들일 뿐 성서가 기억하는 홍수 전 족장들과는 무관한 인물들이라고 보는 견해라고도 할 수 있다. 두 번째 견해는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족장들은 모두 가나안의 인물들이며,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홍수 신화를 비롯한 이야기들이 덧붙여졌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경우, 노아는 대홍수는 물론 지우수드라와 아예 무관한 인물이며, 아담의 경우 딜문이나 알룰림과는 무관한 가나안의 고대 족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두 번째 견해의 경우, 에덴은 레반트 지역에 위치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글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 Noah’s Flood: Competing Visions of a Mesopotamian Tradition:
가장 초기의 이야기/전승 속 노아는 방주를 타 살아남은 홍수의 영웅이 아니라 포도주를 제작한 사람으로서 양조업자들의 시조로서 인식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55], 초기 유대 미드라시(Midrash Genesis Rabba 23.3)에서는 가인의 후손인 라멕의 딸 나아마를 노아의 아내로 기록하고, 나아마(Naamah)는 욥기 2:11에서는 욥의 친구 소발이 속한 부족으로, 여호수아 15:41에서는 유다의 영토이자 그데롯과 막게다 인근의 도시, 곧 사해 동편의 유다 지역의 도시로 기록하는데, 이는 나아마의 남편이었을 노아가 이 지역에서 활동하였거나 이 지역의 나아마 족속에게 시조로 여겨지던 조상이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 지역(페트라 인근 지역; 에돔 광야/아라바 지역)의 나바테아인들이 와인을 제조했음이 고고학적으로 밝혀지기도 했었다 [63]. 또한, 오늘날에도 요르단에는 와인 농장들이 존재한다.
- 참고로, 가인과 셋과 노아와 같은 인물들이 기원전 20세기와 같이 고대의 인물들이라는 주장이나, 가인이 샤수 족의 시조라거나 셋이 슈투 족의 시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음 글들(1, 2, 3, 4)에서 언급하였듯이, 성서의 조상들에 대한 전승이나 기원에 대한 전승의 배경은 기원전 11-10세기를 넘어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들 역시도 기원전 10-9세기나 더 후대에 광야에서 활동하던 족장들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가인이나 셋은 민족의 시조 보다는 겐족이나 셋족과 관련된 인물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실존인물이라면 말이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족속들의 이름을 바탕으로 형성된 문학적 인물들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신약에서 인용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역사적 인물들이나 사건들로 볼 필요는 없다. 기독교인들의 믿음은 그리스도를 향한 것이지 성서 속 사람들과 사건들을 향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도, 그리고 성령께서 역사하셨던 사도들 역시도 유대인들의 관점과 그들의 배경에 맞추어 설교를 하셨던 것이기 때문이다. 즉, 역사적 사실 보다는 문화적/이야기적 관점에서 말씀하신 것이고, 이야기적 관점에서의 의미를 위해, 그리고 당시 하시던 설교를 위해서 인용하신 것이기에 반드시 역사적 사건일 필요는 없다. 오늘날의 우리가 전혀 역사적 사실이 없는 토속적인 이야기나 우화나 비유 등을 인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최초의 와인은 요르단이 아니라 오늘날의 조지아 지역에서 기원전 6000년대부터 만들어졌었다.
참고:
[1] The Great Flood: Archaeology?
[2] "The Lost World of the Flood: Mythology, Theology, and the Deluge Debate." by Tremper Longman and John H. Walton, InterVarsity Press, 2018, pp. 77-78.
[3] 김산해, 최초의 역사 수메르
[4] Mohammed El Bastawesy, The geomorphological and hydrogeological evidences for a Holocene deluge in Arabia
[5] Strong's Concordance #7017
[6] Strong's Concordance #7014
[7] Strong's Concordance #6969
[8] Strong's Concordance #7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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